수필
출근길이었습니다. 언덕 위 앙상한 가지에 푸르스름한 새잎이 돋아나고 있더군요. 나뭇가지 끝 연둣빛의 희미한 색감이 햇살을 머금으니 성화 속 광배처럼 빛이 나서 나무가 신령스럽게 보였습니다. 쓸모없다 여겨지는 잡목도 수만 년의 생명줄을 이어 온 또 하나의 기적이니까요. 신성한 존재가 따로 있다 여기며 어딘가 무언가를 찾아 헤맨 나의 지난 시간들이 헛된 꿈이었을까요. 포도주를 빚고 김장을 담그는 일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숙성의 과정은 삶에도 필요한 것이겠지요.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 물닭 십 여 마리가 도로변 밭에서 모이를 찾고 있더군요. 천연덕스러워서 처음엔 얼핏 오골계인 줄 알았습니다. 들녘 논에서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뭔가를 쪼아 먹고 있더군요. 추수하고 떨어진 낱알갱이거나 계약 농가들이 뿌려놓은 볍씨인지도 모르겠네요. 철새들을 가깝게 볼 수 있는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이 행운이란 생각이 들고 또 감사한 마음입니다.
늘 보이는 젖소 농장을 지나칠 때였습니다. 항상 축사 펜스 너머로 어미 소들만 보였는데 그날은 송아지 두 마리가 축사 앞 빈 논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등이 사람 허리 높이쯤 돼 보이는 어린 송아지들이었어요. 태어난 지 불과 삼 사 개월쯤 되었겠지요. 저희들끼리 신이 났는지 껑충거리면서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방학 첫날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축사에서는 소 한 마리가 고개를 길게 빼고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미 소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잠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었지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농장 주인은 어린 송아지들을 일부러 풀어놓았을 겁니다. 한참 호기심과 운동량이 많을 때이니까요. 튼튼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송아지들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일이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깡충거리던 그 송아지들은 몇 개월 뒤면 첫 출산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평생을 축사에 갇혀 지내게 될 겁니다. 새끼를 낳고 젖을 짜는 일이 반복되는 삶. 새끼를 낳자마자 이별을 해야 하는 일. 그리고 우유가 예전만큼 잘 나오지 않는 날이 닥치겠지요.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낯선 차량에 오르게 되겠지요. 영원한 이별이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겁니다. 매일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주인, 평생을 갇혀 지낸 축사, 제 배로 낳은 새끼들을 떠올렸을까요. 그 큰 눈망울에 그렁하게 이슬이 맺히겠지요.
바로 밑에 동생과 저는 연년생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 저는 엄마의 젖을 충분히 먹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댁에 맡겨져 분유를 먹었다더군요. 우유를 많이 먹어서였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훨씬 컸습니다. 송아지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유치원 졸업사진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더군요. 어릴 때 엄마와 떨어져 지낸 날들이 많아서였을까요. 엄마의 정이 고팠나 봅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지금도 오래 그리운 걸 보면 말입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를 마십니다. 대개 설탕 없이 우유를 조금 섞어서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커피를 한 잔 내리고 냉장고에서 우유팩을 꺼내 뜨거운 커피잔에 조금 부었습니다. 하얀 우유가 커피와 섞이면서 부드러운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약간의 거품도 생기면서 말이죠. 한 모금 마셨을 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때였어요. 송아지가 생각났습니다. 며칠 전 깡충거리면서 논바닥에서 뛰어놀던 그 송아지 말입니다. 커피가 짜더군요. 소금을 넣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삼킬 수 없어 오래 입 안에 머금고 있었습니다. 창문 너머 정원 한가운데 목련이 이제 막 우윳빛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었습니다. 젖이 불은 산모가 아이를 잃고 우두망찰 서 있었어요*.
*문태준의 시 <매화나무의 해산>을 오마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