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중요한가요

수필

by 힉엣눙크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 화분에 심어 놓은 천리향이 꽃을 피웠네요. 문득 삶은 당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는 것,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나는 일이 그러하듯 말이죠. 살아가고 경험하고 마주치는 인연들. 꽃향기에 취하듯 기분 좋은 일을 맞이하기도, 영문도 모른 채 고통에 빠지기도 하지요. 인생은 영광이고 또 능욕입니다.


아직 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봄이 왔음을 느낍니다. 정원에 바람이 불고 높은 가지에서 아름다운 딱새 소리가 들리네요. 제비처럼 소란스럽지만 작고 맑고 외로운 소리입니다. 아마도 이제 곧 짝짓기를 하려나 봅니다.


마당에 복수초가 노랗게 피었고 크리스마스 로즈도 붉고 흰 꽃을 피웠네요. 산수유와 영춘화도 개나리처럼 활짝 만개했습니다. 히아신스, 수선화, 크로커스, 상사화도 푸른 잎을 힘차게 밀어 올리고 있네요. 바야흐로 꽃의 릴레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한편으로 고단한 풀과의 전쟁도 시작이 되었구요.


나는 딱새 암컷도 아닌데 왜 새소리에 마음 설레는지요. 벌이나 나비도 아닌데 왜 피어난 꽃에 매혹되는지요. 그건 내가 자연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이겠지요.


연못가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벤치 옆에 불쑥 솟아오른 흙더미가 올해는 보이질 않는군요. 골칫덩어리 두더지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모양입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고민도 아픔도 이처럼 가뭇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의 작은 말 한마디, 사소한 몸짓과 표정을 자꾸 꺼내보며 신경 쓰는 나의 쪼잔한 모습이 물 위에 비치네요. 광인들이 벌이는 살육의 전장 소식으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습니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울음소리. 치솟는 유가, 퍼렇게 질린 증시 시황. 나의 믿음과 이익에 매달리고 집착하고 강요할수록 불행은 더 다가오지요. 인간은 언제쯤 철이 들까요. 누가 그러더군요. 철들면 죽는다고. 다행히 인류 멸종은 아직 한참 멀었나 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울리는 맑고 청아한 풍경소리. 뎅그렁 뎅그렁... 연못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도 졸졸졸... 금붕어들은 아직 춥다고 돌밑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군요. 조만간 햇볕 따스한 날 붉고 흰 몸체를 드러내며 부드럽고 유연하게 물속을 돌아다니겠지요. 온갖 쓰리고 어둡고 시끄럽고 퀴퀴한 기억들과 감정들이 앙금 가라앉듯 사라지네요. 연못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식사하러 오세요!” 아내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네요. 이제 집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도 좋은 아침을 드셨으면 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겁니다. 마주 앉은 가족과 도란거리면서 말이죠. 그거면 되었지요. 뭐가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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