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스폿은 바로 부산 남포동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멀지 않았고, 집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하루의 일탈을 즐기기엔 제격이었다. 남포동엔 영화관이 있었고, 서점이 있었고, 쇼핑할 노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헌책방이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여고생들이 놀기에 이안한 곳도 없었다. 내 집 드나들 듯 드나들듯 이곳을 드나들었고, 부산을 떠나고 난 뒤에도 늘 그리운 곳이었다.
오늘은 막둥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두 아이들과 기차여행을 떠났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기차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여행코스 중 단연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곳은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 옛날만큼 책방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추억을 떠 올리기엔 충분했다. 그때와는 달리 사진관도 생기고, 홍보하는 장소, 카페도 생겼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여전했다.
나는 왜 보수동 책방골목이 좋았을까. 책이 주는 푸근함이 좋기도 했다. 게다가 값도 싸니 여러 권 사도 부담이 없기도 했고. 친구들과 책방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낭만이 있었다. 친구들과 어느 헌 책방에 들어가 유물을 찾듯 오래된 책을 찾던 20여 년의 기억도 살아난다.
그 길을 이제 우리 아이들과 걷다니. 감격이다.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2권씩 골랐다. 첫째는 학습만화, 둘째는 색찰공부. 각각 3000원씩이다. 이걸 3000원이나 주고 사나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책방을 유지해 주시는 것에 대한 값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어차피 책을 사러 온 것은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던 공간, 내가 좋아했던 시간을 내 아이들과 공유하는 감격은 남달랐다. 피는 못 속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