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일요일 아침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했다. 엄마의 전화가 와 있다. 언뜻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을 터 뜨렸다.
“못 일어나겠다. 한 시간째 엎어져 있어.”
전화조차 힘겹게 받는 엄마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남긴 뒤 서둘러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119에 전화를 했다. 엄마는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오랜 검사 끝에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얘기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곁에서 듣던 엄마 또한 절망 속에 눈물지었다.
1900년대 초, 버들, 홍주, 송화라는 동갑내기 소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마을에 살았다. 가난할 뿐 아니라 일제의 어두움이 덮친 암울한 시대였다.
버들은 일제의 탄압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를 잃었다. 가난하기에 학업도 이어갈 수 없었다. 아니, 끼니조차 해결하는 것도 버들이 가정에는 벅찬 일이었다.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산 홍주는 진짜 양반가에 시집을 갔다. 그러나 2달 만에 남편이 죽어 친정에 돌아온다. 홍주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세상은 홍주를 향해 끊임없이 비난과 저주를 퍼부어댔다.
송화는 마을 무당이었던 금화의 손녀였다. 신분이 천한 데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였다. 동네 사람들의 돌팔매질은 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너무도 예쁘고 고왔던 송화의 엄마 ‘옥화’는 정신이 나가 죽어버렸다. 그 후 송화는 할머니 금화와 함께 사람들을 피해 마을 산속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금화는 하나밖에 없는 손녀까지 잃을까 두려워했다.
그 사이 보따리 장사하러 들르던 ‘부산 아주머니’가 ‘포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가난한 살림에 딸이 시집도 못 가고 늙어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버들의 어머니 윤 씨. 비록 시집간 지 두 달 만에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쫓겨 온 딸이었지만 새 세상에서는 편하게 살길 원했던 홍주의 엄마. 손녀가 평범하게 살길 바랐던 송화의 할머니. 엄마들의 바람과 딸들의 기대가 ‘결혼’으로 이어진다.
단짝이었던 버들과 홍주는 함께 ‘포와’로 가기로 결정한다. 그 사이 부산 아주머니 집에 송화가 먼저 와 있다. 버들이는 공부하러, 홍주는 새로운 결혼과 삶을 꿈꾸며, 송화는 차별과 멸시를 피해 ‘포와’를 꿈꿨다. 이들에게 ‘포와’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이역만리 낯선 땅이었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그들을 더 꿈에 부풀게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기대와 달랐다. 실제 신랑은 사진의 모습과 전혀 다르거나 이미 나이가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사진 신부들은 모두 울고 말았다. 크게 분 풍선일수록 터질 때 요란한 소리를 내듯 세 여인 또한 그랬다. 그들의 부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터지는 울음은 구슬펐다.
사진 속 신랑과 같은 사람은 버들의 신랑 태완뿐이었다. 태완의 병든 아버지가 손자를 보고 싶어 해 결혼을 서둘렀던 것이다. 송화의 남편은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술과 도박을 즐기며 심지어 송화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홍주의 남편은 조선에 두고 온 처자식도 있었다. ‘포와’까지의 고된 여정이 무색하게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은 가혹했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없었다. 주어진 숙명에 순응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은 일제 통치를 받고 있었다. 독립을 위한 운동이 하와이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사진 신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번 돈을 모아 성금을 내는 것뿐 아니라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버들의 남편 태완이었다. 버들은 내심 그런 남편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버들은 어느새 기다리던 첫아들 정호를 낳았다. 이제는 행복만 펼쳐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태완은 버들과 정호를 두고 하와이를 떠났다. 하지만 버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신발 가게를 운영하기도 하고 가정부로, 또 세탁소 일을 하며 열심히 생계를 이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홍주가 짐을 싸 버들을 찾아왔다. 홍주의 남편이 본처가 있는 조선으로 홍주가 낳은 아들까지 데리고 가 버렸던 것이다. 홍주는 버들을 설득해 세탁소를 윈수해 운영하기로 했다. 홍주는 남편이 없는 버들과 함께 버들의 자녀들을 친자식처럼 키웠다. 아이들 또한 홍주를 엄마처럼 의지하며 지냈다.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을 무렵 송화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오랜만에 남편 태완이 집에 다녀갔고, 버들 또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은 장성했다. 홍주는 로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그리고 버들의 남편 태완이 돌아왔다. 끝내 조국의 독립은 보지 못했다. 남은 건 병들고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버들은 말없이 남편을 받아주었다.
정호는 미국 본토에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버들은 정호의 탄탄대로가 자신의 지난날을 보듬어 주는 것 같았다. 정호의 존재가 버들에게는 위로였고, 힘이었다. 그런 정호가 군입대를 하겠다고 했다. 이 일로 모두 온 가족이 모였고 정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조선 사람이지만 국적은 일본인이었던 버들과 태완. 이런 부모로 인해 정호는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었다. 군입대는 어머니 버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정호가 선택한 최선이었다. 군입대를 통해 당당하게 인정받으며 미국 사회에서 자리 잡는 것이 정호가 어머니를 위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한편 버들의 딸 펄은 우연히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홍주의 사진상자를 열었다. 그곳에서 펄은 송화의 사진과 편지를 보게 되었다. 펄은 사진 속 송화를 보자마자 자신이 송화의 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펄은 어릴 적부터 엄마인 버들, 아빠인 태완과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펄은 술에 취해 비몽사몽인 홍주에게 송화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버들의 딸 ‘진주’는 돌이 지나자마자 죽었고, 송화는 딸을 버들에게 맡기고 조선으로 돌아갔던 것이었다.
폭풍 같은 밤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알 리 없는 버들도, 홍주도 펄을 평상시와 같이 대했다. 다만 펄은 자신을 키운 것이 엄마‘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었다.
버들은 춤을 좋아하고 잘 추는 펄이 송화처럼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고 펄이 춤추는 것을 말렸다. 하지만 결국 버들 또한 펄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펄이 펄답게 살도록. 이름처럼 진주같이 살도록.
나를 키워 준 엄마지만 난 엄마에게 정이 없다. 같이 산 엄마였지만 할머니가 나를 키웠기에 오히려 내 마음속 엄마는 할머니다. 그래서인지 사춘기에는 이유 모를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외모도 성격도 엄마를 너무 닮은 나와 직면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얼마나 서먹했는지 모른다. 엄마도 40년 가까이 해 보지 못했던 엄마 노릇을 하려 애썼지만 내겐 조금도 와닿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안쓰럽기보다 의무감으로 엄마를 대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나의 막막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40년 간 잃어버렸던 엄마에 대한 정만큼 그 부담은 몇 배로 다가왔다.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셋이나 있고, 직장생활도 하고 있다. 그마저도 시어머니가 도와주시니 간신히 해 나가고 있는 처지였다. 얼마 전 아빠마저 돌아가시니 병원비마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정이야 없어도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이제는 엄마에게 무언가를 더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먹먹했다.
엄마의 병원을 오가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세 명의 엄마가 있다. 나를 낳아 준 엄마, 30년 동안 나를 키워 준 할머니, 그리고 장성한 나를 도와주시는 시어머니다. 펄은 결코 혼자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자랄 수도 없었다. 펄이라는 존재는 세 명의 엄마의 삶이 얽히고설킨 열매였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세 명의 엄마, 아니 내가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수많은 엄마들 덕분일 거다.
엄마의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걸으시는 것은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엄마에게도 다시 엄마가 필요한 것 같다. 수많은 엄마들이 나를 키웠듯 나도 엄마의 엄마 중 한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힘이 다 빠져 버린 엄마의 곁에 서서 함께 땅을 디디며 마주할 ‘포와’의 역사를 이어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