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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Nov 16. 2021

완벽한 대화

#소울


- 여기 앉으니 자꾸 뭘 털어놓게 되네.

- 의자의 마법이지.


[소울]에는 짧지만 근사한 장면이 있다. 고양이의 몸에 영혼이 갇힌 주인공 '조'가, 자신의 몸에 들어간 영혼 '22'를 데리고 이발소에 가는 씬이다(조의 영혼이 어쩌다 고양이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22는 누구고 왜 조의 몸 속에 들어갔는지, 긴 설명은 이 글에선 생략하기로 한다). 



조의 단골 이발사 '데즈'는 여느 때처럼 그를 의자에 앉히고, 늘 하던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날이다. 처음 보는 고양이(사실 조)를 안고 나타난 조(사실 22)는, 지금까지 데즈가 알고 있던 재즈 연주자 조가 아니다. 수다쟁이 영혼 22는 의자에 앉아 데즈에게 머리를 맡긴 채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지금껏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 이발사가 네 천직 아니었어?

-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


담백하고 가감 없이 본인을 드러내는 조(사실 22)의 태도는 진짜 조(지금은 고양이)가 한 번도 알 수 없었던, 알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데즈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진짜 조에게 그저 야망없는 이발사처럼 보였던 데즈는 사실 한때 수의사를 꿈꾸는 학생이었다. 비록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멋지게 만들어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삶에 몰두하느라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의 세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울]의 이야기에서, 데즈의 이발소는 가장 평범한 장소에 속한다. 이곳에서의 장면들은 어떤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진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가 겪는 일은 [소울]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이다. 조는 이곳에서 자신의 몸을 빌린 22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나를 드러내는 대화를 경험한다. 나를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거기에서 평안을 얻는 시간. 


[소울]은 이 장면에서 별다른 기교를 선보이지 않는다. 대신 소박하고 아름답게 이 모습을 그려낸다. 커다란 창에 드리우는 햇볕이 작은 이발소를 비춘다. 이발사는 할 일을 하고, 손님은 머리를 맡긴 채 대화를 나눈다. 도시의 소음은 들리지 않고, 잔잔한 음악이 배경에 흐른다. 특별한 사건은 아니지만, 대화를 나눈 이들에겐 특별한 기억을 남길만한 완벽한 순간이다. 


- 왜 지금까지 네 인생 이야기는 한 번도 못했지?

- 묻지 않았으니까. 오늘 물어봐 줘서 고마워.


[소울]은 진정으로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영화다. 데즈의 이발소 장면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멋진 의견을 담고 있다. 



-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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