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디스패치
"내 사무실에서 울지 마."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동명의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창간인 겸 편집장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의 부고 기사로 시작한다. 기사는 아서의 생애와 잡지 연혁을 짧게 소개한 후, 그의 유언대로 편집장의 사망과 함께 잡지 또한 폐간될 예정임을 알린다. 서문 역할을 하는 부고가 끝나면, 영화는 잡지의 구성대로 준비된 기사들을 차례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관객은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독자가 된다.
이야기를 여러 챕터로 구분하고 그것을 단위 삼아 영화를 끌어가는 웨스 앤더슨의 스토리텔링은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여전하다. 동시에 조금 다르다. 그의 전작들이 하나의 큰 줄거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호흡을 조절하는 용도로 챕터를 사용했다면, 잡지의 형식을 띄고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각 챕터는 독립된 기사로 구분된다. 각 기사들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개별 이야기 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인이 된 아서의 존재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각 기사-챕터가 끝날 때마다 아서가 해당 원고를 쓴 기자의 작업실에 방문하는 장면을 배치한다. 이 배치를 반복하면서, 영화는 아서가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 크루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보여준다. 각 장면들은 정황상 기사 작성이 갓 완료된 과거 시점으로 보이며, 모두 원고를 읽은 아서가 피드백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때로는 기사에 수정을 가하고, 때로는 기자를 독려하며, 때로는 황망함을 담담히 견디고 있는 동료의 옆을 말없이 지키기도 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서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도입부의 부고와 각 챕터 사이에 볼 수 있는 짧은 비화들 외에 관객이 아서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각 에피소드에서 짐작할 수 있는 아서의 성정에 비추어 볼 때, 프렌치 디스패치 필진들의 시각과 개성이 누구의 보호 아래에서 지켜져 왔는지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영화는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생일날 돌연 세상을 떠난 아서가 책상 위에 누워 있다. 슬프지만 생전 그가 늘 강조했던 것처럼, 사무실에서 눈물은 금지다. 프렌치 디스패치 멤버들은 아서의 부고 기사를 쓰기 위해 한 문장씩 돌아가며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다. 한 기자가 묻는다. "다음은?" 추모를 위한 자리는 어느새 웅성거리는 토론으로 발전한다. 아서와 프렌치 디스패치는 떠났지만, 유산은 남아있다.
-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