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살인마에게 매번 꽃을 선물하는 남자.
결혼 후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은 꽃이다. 기념일은 물론이고, 남편은 자주 꽃을 선물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꽃인가?'라고 착각하며 12년째 살고 있다. 그 착각도 나쁘지 않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요즘 조금 예민한 거 같다며 아무 날도 아닌데 퇴근길에 프리지어 한 다발을 내게 안겼다.
'그렇지! 봄은 프리지어지!'
집안 가득 프리지어 향이다. 따듯한 햇살, 꽃향기가 우리 집에 봄을 가져다줬다. 안 그래도 좋아하는 봄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몇 주전 반려식물을 들였다. 고백 하나를 하자면 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식물 살인마'이다.
지인들이 식물 살인마가 된 이유를 프로파일링 해주었는데 결론은 너무 많은 관심 때문이라고 했다.
꽃과 식물에게 필요한 건 바람, 햇살, 물을 적당히 줘야하는데 매일 들여다보며 '괜찮나? 안 괜찮나? 온갖 관심을 두고 있으니, 과잉보호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듯 식물도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분석은 아주 완벽했다.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반려식물을 무척 들이고 싶어 했다. 사실 반려동물을 더 키우고 싶어 했지만 그건 아직 깜냥 부족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이야 뭐라도 키우길 좋아하니 그렇다 치고, 남편은 액자하나 걸지 않는 모던한 우리 집에 식물이 들어오면 조금 더 따뜻한 분위기가 날것이라고 적극 권했다. 큰 마음을 먹고 반려식물을 6그루를 데려왔다.
모든 일의 시작은 장비 발이니 화분을 샀으니 화분대가 필요했다. 남편은 이번 반려식물들을 잘 키우면 예쁜 화분대를 사주겠노라 약속했다. 급한 대로 장난감 방에 보드게임 보관용으로 뒀던 선반을 찾아 화분을 올려뒀다.처음에는 잘 키워서 예쁜 화분대와 가드닝 용품을 구입할 요량으로 잘 자라길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나와달리 마음이 예쁜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화분에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잘 지냈냐고 말을 건넨다. 그 덕분인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떤 화분들은 꽤 키가 커지고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다.
쑥쑥 자라는 식물을 보고 있자니 화분대에 초 관심을 두었던 마음이 조금 잊혀 간다. 우리 집에 온 식물들이 잘 자라서 우리 식구가 된 일에 식물들도 행복하길 바래졌다.
진작 들일걸.. 이것이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떠난 이 공간에 살아 숨 쉬는 식물들과 꽃, 그리고 커피,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오늘따라 평온하고 감사하다.
한 가지 욕심을 더 부려본다면 부디 식물 살인마에서 교화가 잘되어 멋진 정원사가 되고 싶다.
몇 년째 코로나19로 계절이 바뀜도 잘 느끼치 못한 채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이번 봄은 누구에게든 따듯하고, 조금은 행복한 봄이 되길 바라본다.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가까이 다가온 봄을 느껴보자. 코 끝에서 느껴지는 프리지아향을 느껴보자.
봄. 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