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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May 27. 2022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 1.

시어머님과 동거에서 해방을 꿈꿀 수 있을까요?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나 연일 화제다.특히, 주인공 중 손석구의 역할인 '구 씨'가 이슈다. 드라마 40년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 드라마 시작부터 주인공들 이름은 쉽게 공개된다. 유독 이 드라마에서는 구 씨라는 성만 말해주고 몇 회차가 지나서야 비로소 주인공 이름을 공개하는 약간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구찌보다 구 씨"가 인기다. 구 씨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해방 일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여러 주인공 중 염미정(김지원)이 구 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한 뒤 "추앙"이라는 단어도 큰 화제가 됐다.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추앙하느라 바쁜 요즘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사랑도, 썸도 아니고, 추앙이라니... 드라마 자체는 어찌 보면 조금 어둡고, 아주 평범하면서도 독특하고,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유머, 뜬금없는 상황들, 호불호가 충분히 있을 만한 드라마다. 매 주말 열혈 시청을 중이다.


드라마 제목이 왜 해방 일지일까? 회차를 더해가며 그 궁금증은 해결된다. 드라마에서 염미정(김지원)이 회사에서 사내 동아리 활동을 재촉받는데, 미정이는 등록하고 싶은 동아리가 없었다. 그런 회사 사람 두 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아예 동아리를 만들어 버린다. 그 동아리 명이 '해방클럽"이었다. 


드라마에서 해방 클럽의 규칙은 세 가지였다.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


이후 구 씨만큼이나 너도나도 해방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해방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방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인 1910년 정도쯤으로 시작해 1945년에 사용할 줄 알았던 해방인데 2022년에 해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이 또한 흥미로운 상황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하고 싶은 것일까?

직장으로 부터 해방? 

경제적 해방?

현재의 자신의 삶으로 부터 해방? 뭔가 나도 해방을 꼭 해야 할 것 같은 욕구가 불끈 달아 올랐다. 

 해방 클럽의 규칙을 내 규칙으로 여기고, 12년 만에 며느리 해방 일지를 써봐야겠다 다짐했다.


나만 알고 싶은 이야기-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

오랫동안 넣어두었던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며느리 해방 일지 1.


결혼생활 12년째, 홀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다. 시아버님은 얼굴도 뵙기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형님은 결혼을 해서 분가했고, 남편과 어머님이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시집살이로 힘들 때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와 사는걸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원망스러웠다. 내 선택이었고, 내 의지였고, 어쩌면 강하게 말렸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따윈 귀에 차지 않았던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살면서 누군가를 원망하면 조금 덜 아플까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나 보다. 그마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누군가 원망하는 일은 잊은 지 오래다.


시어머님과 사이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맞벌이 생활 때는 괜찮았는데 전업주부가 되면서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졌다. 흔히 고부간의 갈등이 되는 이슈들은 한 번쯤 겪은 듯하다. 분가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어려웠고, 결국 아직도 분가하지 못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4년 전 쯤 시어머님은 결국 치매 판정을 받게 되었다. 우울증이 있으셨는데, 외부 활동이 전혀 없으시다 보니 결국 치매까지 오게 되었다. 병에 걸리는 건 사실 누구 탓은 아니다. 특히 본인이 가장 힘든 게 병이니 누구를 탓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형님께 이 사실을 알리자 치매의 요인을 정확히 분석해 주셨다. 

 "엄마 치매는 너희(우리부부) 때문에 걸린 거야!"  나도 모르는 위대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었나? 혹시 내가 마법사인가? 그렇다면 치매를 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맡겨만 주시면 기껏 이 치매에 걸리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고 심한 말이다. 잊어야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내뱉던 표정, 목소리, 말투가 매일 되새김된다. 어머님이 치매에 걸렸을 때의 충격보다, 그날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형님 이하 (J라고 칭함) 시어머님의 치매 이후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지방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일 년에 서너 번 엄마 보러 와서는 딱 두 시간 보고 돌아가는 사람, 늘 식간에 찾아와 밥도 잘 안 사드리고, 사드려도 흔해 빠진 순댓국이나 사드리고 가는 사람(시어머니는 식성이 고급이라 초밥 이런 거 좋아하시는데 몰랐을까?) 집에 택배를 보내도 엄마 먹을 1인분만 보내는 사람, 조카들이 어느새 12살, 8살이 되었는데도 단 한 번 얼굴도 보지 않은 사람, 우리보다 훨씬 형편도 좋고,  여행이나 다니며 여유가 있게 살고 있는 J가 매일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붙잡고 원망하고 욕할 수 없었다. 남편도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시어머님의 치매는 빠른 진행성은 아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점점 안 좋아지긴 했다. 응급실행은 수시로, 없어져서 찾기는 몇 번 등의 이슈들은 많았지만, 착한 치매라고 딱히 욕이나 도둑 망상, 배회 등은 없었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무조건 응급실에 가야 했다. 아무런 처방도, 약도 없이 응급실에만 다녀오면 좋아지는 그런 날들은 점점 많아졌다. 


12년 동안 한결같이 자상하고, 사랑해주는 남편과 두 아이를 버팀목으로 살았었다. 많이 울었고, 힘들었다. 친구 말처럼 가장 빛나야 했던 나의 삼십 대, 사십 대 초반은 시어머님과의 갈등으로 아팠다. 치매가 시작되면서 외출과 여행은 더 제약이 많아졌고, 멀리 있는 친정에 남편과 함께 머물 수도 없게 되었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 남자들이 결혼만 하면 효자가 된다고들 하는데 이미 효자인 남편과 사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결혼 생활 동안 우리 문제로 싸운 건 손꼽힐 정도로 사이좋은 부부이다. 싸움이 생기면 시어머님 일이었다. 싸움도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게 맞나 보다.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런 일로 싸우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밖에서 보면 이제 잘 적응하고 사나 보다 싶겠지만 점점 안으로 응어리들이  곪기 시작했고, 결국 시어머님과의 대화에서 입을 닫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며느리 해방 일지 2에서 계속...>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지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나의 해방 일지, 염미정 대사 사진 출처_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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