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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ul 21. 2022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 4.

정말 나에게 좋은 일이 있긴 한 걸까요?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이  한두 시간 되나?

나머지는 다 견디는 시간.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가보자.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단정하게 가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나의 해방 일지_사진,대사 출처 JTBC>




며느리 해방 일지를 쓰면서 그동안의 12년을 생각했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드라마 대사처럼 하루하루 힘들게 나를 끌고 살아온 것일까? 결국 버티는 삶이 었나? 분명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있었는데 그 기억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한 순간도 떠오르지 않는다.


몇 달 전 시어머니께서 시술을 받으셨다. 그 이후 치매 증세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치매의 진행속도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나빠지는가 싶었는데, 며칠 사이에 장맛비에 흠뻑 젖듯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말도 잘 못하시고, 기억력도 나빠지고, 실수가 잦아졌다. 안갯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어머님 기억에 남아 있는 게 몇 개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마지막에 생각하고자 했던 곳,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시기가 된 듯했다. 남편은 어렵게 마음을 정했다. 집 근처 요양원을 섭외해서 전화를 하고, 방문을 하고 어렵게 계실 곳을 결정을 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매일 우리 가족끼리만 사는 집을 꿈꾸고 그렸다. 그래서 방 한 칸의 원룸이라도 우리 가족끼리만 있을 수 있다면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요양원을 알아보고 마음을 정하면서, 정말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이 찾아왔다. 결국, 내가 응급실에 가고 병이 났다. 시어머님과는 미운 정도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미운 정이 들어버린 건지 버티는 김에 조금 더 집에서 모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프고 힘든 기억을 어느새 잊은 듯 말이다.


함께 살지 않는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요양원에 가시면 적응해서 잘 지내시는지도 매일 노심초사해야 할 것이고, 매일 보고 있지 않으니 상태가 어떠신지도 불안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담도 커졌다. 요양원 비용과 소모품 비용을 생각하면 한 달에 80만 원 정도를 지급해야 한다. 두 녀석 다 학령기라 교육비의 비중이 커질 대로 커질 시기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J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라도 꺼내보기로 했다. 얼마가 되든 조금이라도 나누면 부담이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 십원의 부담도 하지 않겠노라 했다. 어쩌면 예상 답인줄 알면서도 너무 당당한 거절에 또한 번의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상태가 나빠지신 걸 알면서도 시어머니를 보러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은 J와의 관계를 포기하자고 했고, 그날 우린 참 많이 울었다. 그간의 고생, 미안함...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편을 보며 많이 미안했고, 안쓰러웠고, 속상했다.


그날 밤,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시어머니의 치매 발병 이후 매일 숨 막히는 일상이었다. 이유 없이 늘 불쾌하고 화가 난 기분이었고, 가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시어머니의 발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쿵 거리는 감정을 매 순간 느끼며, 몸도 마음도 아픈 날의 연속이었다. 시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신다고 한들 우리에게 과연 좋은 일이 생기긴 할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 5.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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