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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un 10. 2022

12년 만에 쓰는 며느리 해방 일지 3.

못된 말 사전을 가지고 계신 거라면 저 좀 빌려 주세요.

살아오며  가장 모욕적인 순간은 그 날 이었다. 

순탄한 삶이어서 그랬을까? 감사하게도 주변 환경이 나쁘지 않아서였을까? 가끔 뒤통수 맞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인생사 뒤통수도 안 맞고 살 수 없으니 조금 의연하게 살아온 나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었다.


임산부의 호르몬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막달

출산을 일주일 앞두고 휴직을 했다. 출산 전까지 꽉 차게 회사를 다니게 되어 몸도 마음도 힘든 상태였다. 곧 시어머님 생일이라 백화점에 장을 보러 갔다. 마침 J가 새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집들이를 하겠다고 했다. 집에서 거리가 한 시간 반 이상되고, 상습 정체구간에 계속 출근해야했던 만삭인 나는 빼고, 시어머님과 남편이 가게 되었는데 그게 화근이 될 줄 몰랐다. 내가 시댁 식구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그때 새삼 알기도 했다. 나의 방문이 무산 된 사실을 알게 된 J는 아들과 시어머님이 그 집으로 향할 때 전화를 걸어 온갖 폭언을 해댔다. 주된 이유는 자신을 무시한다였고(그러기엔 얼굴 본 횟수가 두번이었나), 자신의 엄마에게 딸 같은 며느리처럼 대한다고 하더니 자신의 엄마를 무시했다고 했다. 대학원을 나오면 뭐하냐며 갑자기 학력비하 부터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냐는 말까지 세상에 못된 말들의 총 집합체를 그날 들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전화를 끊고 눈물이 앞을 가려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어 백화점 문 앞 벤치에 앉아 서럽게 울었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에 옆에 앉으셔서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지 같은 인간들, 다들 잘난 척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말 말 말 "


"어딜 가나 속 터지는 인간들이 있을 거고,  그 인간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고

그럼 내가 바꿔야 하는데 나의 이 분로를 놓고 싶지 않아.   나의 분노는 너무 정당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대사, 사진 출처 JTBC>



맹세코, 시어머니에게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 딸 노릇도 잘 못하면서 남의 엄마한테 무슨 딸까지? 그럴 깜냥이 못된다. 결혼해서 대학원 다니느라 남편이 학비를 대준 것도 아니고, 연필한자루 사준 적 없으면서 결혼 전에 졸업한 대학원 이야기가 왜 거기서 등장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냥 J가 이상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말았으면 되었는데, 우리 엄마를 무시했고~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아직 어린 우리 딸과 나사이에도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비밀이 있기 마련이니 어머님도 J와 비밀이 캘 수 없을 만큼 많을 거리 짐작된다. 하지만 시어머님은 그동안  며느리에 대한 어떤 말들을 쏟아 내셨길래 다섯 번도 만나지  않은 나에게  세상의 못된 말들을 찾아내서  그것도 출산 일주일 앞둔 올케에게 퍼붓는가? 였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는다면 보지 않는 시간동안 미움도 줄었겠지만 그 말을 듣고, 저녁에 집에 와서 시어머님과 마주 앉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기막힌 사실이 더 잊지 못할 그날이 된 듯 하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였는데 그날 이후 상대방이 상처를 준말을 토시 하나 빼먹지 않고  기정 저장소에서 저장되었다가 불쑥 불쑥 생각이 나서 스스로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J는 이상한 말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이거 누가 만들었을까 맞춰봐?( 장학퀴즈 정도는 되어야 저랑 급이 맞죠!당연히 정답 맞췄습니다.) 엄마설겆이 힘들지 식기 세척기 내가 사줄게 (퇴근후 설겆이는 그래도 제가 했어요~ 친정에서 사주셨네요). 용돈 얼마나 드려? 난 자주 안드려도 적게는 이렇게 안 드리는데 한 번에 많이 드려!(그런데 어머님 통장은   텅장이었을까요?)  가장 결정적인건 우리 두 아이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것이다. 여태 아이들을 보러 온적도 없고 딱 한번 우리가 외출한 사이 집에왔다가 우리가 집에 도착하니 도망가듯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대체 고모가 누구냐고 묻는다. 제일 난감한 질문이다.  J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살다 살다 그런 사람 처음 본다는 말을 J를 보면서 내 입으로 하게 됐고, 남을 무시하는 말투, 뭐든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말투, 못된 말 사전을 펴서 찾은 단어들을 내뱉듯이 모든 말이 상처가 되었다. 그러니 그다지 좋지 않은 고부간에 중간에서 불난 집에 기름 붓고 있으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불씨는 점점 더 커졌지 결코 진화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자신에게 해가 됨을 알지만, 이제 미워하는 단계에선 벗어났고, 내인생이 미움에서 벗어나 정말 나쁜 사람 한 명 정도는 두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살면서 욕을 안 배운 일이, 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게 J를 만나고 대화할 때마다 후회가 되는 대목이 되었다.


<며느리 해방 일지 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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