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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un 22. 2023

사춘기에 입문하시는 겁니까?

엄마 마음 다스림을 위해 클래식 문외자가 한곡 올리자면...

요즘, 최애 음악은 우연히 듣게 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곡 "바흐_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이다.

클래식 애호가도, 피아노 전공자도 아니면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되었다.

클래식이라고는 학교 때 배운 베토벤, 모차르트, 좀 더 생각해 보면 헨델, 바흐... 얼굴이 뒤섞이며 떠오른다.

집에서 클래식 음악이 켜지는 시점은, 초등학교 6학년 첫째 아이의 사춘기 호르몬이 눈을 통해 레이저로 변환되어 발사될 때다.

아이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호르몬 레이저는 스타워즈의 광선검과 비슷하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라도 깔린 듯-일단 반쯤 눈을 내리깔고 위풍당당 등장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처럼감정이 격양된다. 그래도 내가 어른이니까 어른답게 굴어야 한다는 이성이 어느새 찾아와 ‘바흐의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 연주가 귓가에 맴돈다. 그 후엔 맘스터치(등짝스매싱)하고 싶은 욕구도 사그라드는 신세계를 매일 경험한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나 자연스럽게 학업 이야기가 나왔다. 초 6이니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수학공부 세팅 다시 하라고 찐한 조언을 해주었다. 첫째가 고등학생인 친구 말을 들으니,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나 몰라라 했던  수학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그날 이후 요리보고, 저리 봐도 음음~ 알 수 없는 아이 수학공부가 최대의 난제가 되었다. 아직 수학학원에 가지 않은 혼공아(혼자 공부하는 아이)이고, 요즘 수학은 우리 때랑은 또 다르다고 하니, 뼛속까지 문과이고, 아이들에게는 무덤까지 비밀인 수포자 엄마의 고민과 두려움은 날로 커져갔다.

수학 공부에 관한 책을 보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유튜브를 듣는다. 왕년에 수학 좀 했다는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이번기회에 대입을 다시 봐서 당신이 서울대 입성하는 건 어때? 의사 되고 싶어 했잖아."

'날 뭘로 보고 이래 봬도 김석사인걸 잊은 게야! 어라-이참에 의대를 가봐? '불끈 주먹을 쥐었다. 의사가 되면 병원 차려줄 거냐고, 자신 없음을 으름장으로 꾸며 단박에 거절했다.


이런저런 심난함을 잠재워 보고자  수학공부에 관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학부모의 온라인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등록된 글의 주된 내용은 '문제집 추천해 주세요. 과고나 자사고에 보내려면 이 정도면 되나요. 학원은 어디를 보내면 좋은가요!‘엄마들이 아이 학업, 사춘기, 학원등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공간이다. 신기한 점은 대가를 제공하거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엄마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정성스럽게 알려준다. 이 친절함이란 대한민국 엄마들 최고라 치켜세우고 싶다.

 <문득, 외국에도 이런 온라인커뮤니티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공부하는 당사자도 아닌, 부모가 아이들 공부 고민하는 커뮤니티가 외국에도 존재할까?>


쭉 읽다 보니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무려 70여 개가 넘는 덧글이 남겨져 있었다. 오늘 아침 이유 없이 짜증 내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화가 나서 학교 가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고, 다들 이러시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여기가 아미(BTS) 팬카페도 아니고, 덧글이리 이렇게 많이 남겨졌다는 건 많은 학부모의 공감이라고 여겨진다. 덧글에는 공감, 위로, 격려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읽으면서 공감도 했고, 내 이야기처럼 속상하던 찰나, 며칠 전 아이 학교에서 들었던 교육 생각이 났다. 부모 대상 성교육이었고, 사춘기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여러 사례가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세 가지였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이러한 행동이 시작된다고 했다.


- 친구들과 함께 걸어갈 때 엄마를 모르는 척한다.

- 아무 이유 없이 매사 억울하다.

-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지 않다.


첫 번째 행동은 아직 나타나진 않았다. 집에서는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다가 외출만 하면, 멀지 감치 떨어져 걷긴 한다. 조만간  밖에서 만나면 모른척하는 그날이 곧 오지 싶다.


두 번째 행동인 억울함은 시작됐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이런 감정은 5학년 때 가장 심했고, 6학년이 되니 조금 나아졌다. 요즘 억울함은 애정하는 야구 볼 때다. 응원하는 팀 투수가 분명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졌는데, 심판이 볼이라고 잡아 줄 때 세상 억울하다.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야구라고 생각되는 건 아마도, 집에서는 큰 이슈로 기억될만한 억울한 사건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맥락도 없이 억울하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그랬구나' 공감해 주라는 해결책을 주셨는데 글쎄... 내공이 부족한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공감이지 않나 싶다. 어쨌든, 강사는 아이들이 너도 나도 하도 억울해하길래 억울함의 근원을 찾고 또 찾아봐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못 찾았다고 했다. 어쩌면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으나 사춘기의 억울함의 근원은 "이유 없음"일 수도 있겠다.


세 번째 행동은 비일비재하다. 분명 전날 다투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 말도 없이 레이저를 쏘며  기분 나쁘게 방에서 나온다. 괜히 아이를 자극해서 아침부터 그 화살을 엄마가 맞지 말라고 강사는 부탁했다. 일부 엄마들은 아무리 사춘기라도 부모가 다 맞춰만 줘야 하냐! 예의 없을 때는 혼도내고, 이유 없을 땐 따져 묻기도 하는 게 맞지 않냐고 반발해 보지만 결국, 호르몬을 이길 인간은 만무하니, 최대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 조금 더 쉽게 생각하자면, 우리 아이는 호르몬 환자다 생각하라고 했다. 환자랑 싸우면 안 되지 않느냐. 이 또한 지나가니 그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자는 결론에 이른다.


듣기도 했고, 아는 내용이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감정을 통제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거기에 우리도 갱년기 입문 직전이니 서로 대치되는 상황이 잦아지고. 한 숨을 넘어 큰 숨이 절로 나온다.


갑자기 억울해하는 아이를 바라본다. 나의 사춘기도 저랬었나?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마음대로 확신하고 진짜처럼 믿어 본다. 어차피 돌아가신 엄마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상황에 묻어간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곧 첫째 아이가 호르몬이라는 해괴한 광선검을 쏘며, 하교할 시간이 되어 간다.


서둘러 음악을 틀자.


임윤찬 나와라 오버.

음악 큐!

바흐_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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