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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Aug 30. 2023

집에 초능력자 한 명씩은 다 있잖아요?

훤히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엄마, 블랙요원이었을까?

웹드라마 무빙이 연일 이슈다. 우리 정서에 맞는 슈퍼히어로물이라 주말 밤마다 남편과 함께 애청 중이다.

시청을 하다 남편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고민한다고 생기지도 않은 초능력에 대해 한 참 고민을 하는 눈치다. 초능력을 고민하다니... 고민한다 건 이미 초능력 가질 자격 미달 아닌가?

적어도 나에게는 남편에게 없는 초능력 비슷한 게 있다. 안타깝게 인류의 평화를 위해 사용 불가하며, 우리 집에만 적용되는 능력이다. 그건 바로 안 봐도 속이 훤히 보이는 "안 왔지만 이미 본 것 같은 cctv"가 몸속에 장착되어 있다. 무려 13년 된 cctv이다. 사각지대가 거의 없고 화면과 동시에 음성도 지원되는 특이성이 있다.

이러한 능력은 기혼자이며, 남편이 있거나, 자녀들 둔 여성들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한번 맞아 들어가면 적중렬 99%로 굴비 엮듯이 줄줄이 나온다. 가끔 혼란이 있어 제대로 인식 못할 때도 더러 있다. 기계도 오류가 있는데 인간은 더하지 않겠는가? 이 능력은 특히, 외출을 해서 집에 분명히 없었지만 있었던 것처럼 남편, 아이들의 행적을 고스란히 알 수 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이다.



예정이 없던 일이 생겨 급히 마포역으로 향했다. 간단히 AS 된 물품을 가져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첫째 아이의 금요일은 영어 학원 수업시간이 길어, 하교 후 간식을 먹고 빈둥거리다 학원을 간다. 하교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급하게 나왔다며, 간식 먹고 쉬었다 가라는 말을 남기고 일을 보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비어있었다. 그런데 집에 2시간가량 머물렀던 아이의 흔적이 소파와 간식 먹고 넣어둔 부엌에서만  보였다. 요즘 이북을 자주 읽길래, 마포 가는 길에 읽을까 싶어 가져가려다 쉬면서 책 읽고 가겠지 싶어 거실 탁자 위에 두고 다녀왔다. 그것도 간식옆에 친절히 배치해 두었다. 그런데 이북이 전혀 움직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틀린 그림 찾기 하듯 집안을 스캔해 본다. 이미 먹어 아이 뱃속으로  사라진 만두와 소파 위에 어질러진 쿠션들 외에 다른 물건들의 이동이나 사람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격적으로 cctv 재생 버튼을 눌러본다. 아이는 들어와서 가방을 벗고, 물통을 싱크대 위에 올려 둔다. 그리고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만두와 음료수를 마신다. 다 먹은 후 싱크대에 가져다 두고, 소파에 눕는다. 동시에 그를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카톡 카톡"

남자아이인데 카톡 하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 도대체 무슨 수다가 이렇게 길어지는 거냐고 물어보니, 게임이야기 란다. 오늘 내 게임은 이랬고, 저랬고, 별거 없다고... 그 별거 없는 카톡의 빈도수가 너무 잦아 이미, 경고를 두어 번 했었다. 자기가 알아거 컨트롤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잘 되지 않아 벼르던 참이었다.

그날 저녁 '오늘 뭐 하다 학원 갔어?' 

'책 읽다 갔지~' 너무 능청스러운 말투에 그냥 넘어가줘 본다. 마음 같아선 '신나게 휴대폰 하고 갔구먼 무슨 책이야! 거짓말도 하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한 번 참아본다. 아이 양심이 요동 쳐 주길 바라면서...


주말, 정해진 게임 시간이 임박했는데 헐레벌떡 아들이 뛰어온다.

'엄마 나 게임 시간이 10분 남았는데 한 게임 더하고 싶어요.'

'네가 알아서 결정해~' 옆에 있던 아빠는 본전도 못 찾을 자비를 베푼다.  '다음 주 꺼 가불해~'

그러더니 한 게임만 더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한 달 정도 되어가니 게임규칙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계속 지켜보다 안 되겠다 싶어 게임 끝난 아들을 불러 세운다. '엄마가 너무했네', '치사 빵꾸 똥꾸 유치뿡'이라고 놀려고 할 수 없다. 이면지 뒤에 대충 칸을 채워서 게임장부 만들었다. 성격대로라면 컴퓨터로 표 그리기를 이용하고, 예쁘게 프린트까지 해서 짠하고 줘야 맞겠지, 이번엔 급했다. 건네주며, 매주 작성하고, 한 달에 한 번 게임 접속 시간을 체크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규칙이 완전히 깨지면, 그때는 정말 세상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게임과 가슴 시린 이별을 해야 하니 사전 방지를 위해서라고 해두자.

아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장부에 시간을 기록한다. 괄호를 치고 오늘 가불 한 시간까지 빠짐없이 작성을 마친다. 그 장부 쓸 때 거짓으로 작성하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한마디 더 보탠다. 만약 거짓으로 작성 시...

영화의 타짜 대사를 읊고 싶었지만 아이 상대로 하는 거라 속으로만 중얼중얼거렸다.

(장부기록에 손모가지.....)

                                                             



이쯤에서 멈췄으면 조금은 덜 치사한 엄마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날 리 없다. 그동안 참고 견딘 스스로에게도 사이다 한잔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아이에게 세상 최고 유치하고 치사한 엄마가 되기로 작정한 김에 한 마디 더 꺼낸다.

'금요일에 책 한자도 안 보고 휴대폰만 하고 갔으면서 거짓말은 왜 했어?' 

'책 읽었어'

'아들 능력 대단하네. 엄마가 놓은 자리에 그대로 봤던 책을 놓는 능력이 있었던가?'

이럴 때는 '다른 책 봤어요~'라고 말했어야 했다. 집안에 널린 게 책이니까.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

오늘도 고장 나지 않은 cctv는 적중했다. 이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잔소리 랩시작이다.

'휴대폰 사용은 알아서 제어한다고 했잖니?, 이런 사소한 거짓말을 왜 하니? 그런 뻔한 거짓말은 마!'  

아마도 다음번에는 책 위치를 바꾼다던지  집안을 어지럽힐 계획을 속으로 하고 있겠지만 그래봤자다. 약간의 강박으로 놓아둔 물건의 위치, 모양의 변형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엄마를 속이려면, 무빙드라마 주인공들 쯤의 능력치는 되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솔직해지는 편이 낫다. 적어도 성년이 되는 8년 정도는 싫건 좋건  엄마와 한 집에서 공생해야 하니까...


어쩌면 지금의 능력 외에 다른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특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능력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업그레이드되어  힘이 세진다거나, 하늘을 날아 무언가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능력을 장착하게 될지 모른다는 미련한 기대와 헛된 희망을 가져본다.



오늘도 엄마는 사춘기 아들을 위한 또 다른 초능력 개발에 힘쓰고, 아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엄마를 조금이라도 속여보자며 머리 굴리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갱년기를 앞둔 엄마와 사춘기에 입문한 아들이 사는 이곳의 공기는 묘하고 신비하며, 때론 요란한 웃음소리와 약간의 눈물 그리고, 내용을 알 수 없는 대화가 오늘도 오가고 있다.



<사진 출처 :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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