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7끼 집밥 메뉴를 정해라.
집밥 파업을 선언했다.
나는 매일 삼시세끼 집밥을 한다. 국선생이라 불릴 정도로 국정도는 어지간하면 다 끓여내고, 내가 한 음식은 내가 먹어도 맛있어 음식을 조금씩 자주 해 먹는 편이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을 가정 보육하면서 거의 매일 삼시 세 끼를 해먹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주말에 외식은 주 1회 정도이며, 주중에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외식을 못하니 배달을 주 1회 1번 정도 시킨다.
남편은 크게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 문제는 열 한살이와 소룡이다. 열 한살이는 이제 매운맛에 눈을 떴고, 야채를 싫어하며 편식이 심하고 까다롭다. 소룡이는 아직 매운 것을 못 먹어서 제육볶음을 하더라도 매운맛과 간장 제육볶음 이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해야 한다. 즉, 대부분의 음식은 두 가지 버전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집밥 파업을 선언한 이유는 이것이다. 집에서 밥하는 것도 힘들고 아이들도 집밥에 지쳐갈 때 남편과 사 먹기로 결정을 했다. 점심 먹고 난 이후부터 계속 저녁 걱정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물었다. 남편은 "김여사가 먹고 싶은 걸로 먹자" 현실은 내가 먹고 싶은 건 아이들이 못 먹는 매운 음식이다. 열한 살 이에게 "치킨 먹을까?" "엄마는 치킨 먹고 싶어? 의 의미는 싫다는 것이다. 소룡이는 물어보마 마나 새우볶음밥이다. 물어봐도 새우볶음밥이었다.
오늘은 저녁은 배달의 힘을 빌려볼까 했는데 이런 뜨뜻미지근한 의견들에 갑자기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욱"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날은 배달시켜도 다들 잘 먹지도 않는다. 아마도 낮에 김밥을 든든히 먹은 탓에 저녁 생각이 없었을 수 도 있겠지 싶지만 괘씸함이 밀려왔다.
남편이 퇴근길에 "초밥 시켜먹을까?" 했지만 심술이 잔뜩 나 있는 나는 "오늘 저녁은 그냥 집에 있는 밥이랑 반찬 먹을 거야 더 이상 밥 이야기하지 마" 잔뜩 심통을 냈다.
밑반찬을 꺼내고 두부조림을 하고 오늘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세 사람에게 미션을 줄 테니 잘 수행해 주세요"
아이들인 재미있는 미션이 준비되어 있을 줄 알고 신이 난다. 남편은 눈치를 챘는지" 메뉴를 정하라는 건가?" 한다. 종이에 대충 그린 정말 무성의하게 빈칸을 준다. 총 27끼이다. "요리는 내가 해 줄 수 있어, 메뉴에 적힌 대로만 할 거야. 구체적으로 적지 않으면 밥과 김치 이렇게만 나가는 날도 있을 거야"
저녁을 먹고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정한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이것을 정할까 저것을 정할까 히히덕거린다.
20분쯤 지나니 소룡이는 "너무 어려워, 그만하고 싶어", 열 살이는 "멀 먹지? "베베 몸을 꼬기 시작한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먼저 좋아하는 걸 적어보자 하며 적어본다. 그러더니 어느새 그동안 뭘 먹었지? 하며 오랜 상념에 빠진다. 열 살 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도 넣어야지 하더니 금세 얼굴이 빨개진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데?" 열한 살 이가 "아. 빵.... 좋아하잖아 "하더니 더 얼굴이 빨개진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껌 순서도 다 외우는데 나는 모르겠네 한다."
나는 뭐든 잘 먹는다. 편식이 심했는데 크면서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는다. 아직 안 먹는 음식도 있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범위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못 먹고 산 세월이 얼마인지 괜히 서글퍼진다. 오죽하면 남편과 아이들 재우고 텔레비전 보면서 나오는 매운 치킨들 광고를 보며, 언제쯤 우리는 저 매운 치킨을 먹을 수 있을까 한다. 치킨을 두 마리 시켜도 아이들이 후라이드와 간장, 또는 후라이드와 짜장 그런 것을 고르니 광고에 나오는 고추 바*삭같은 치킨은 먹어 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우리 언젠가 1인 1 닭을 아이들 몰래 시켜서 먹자 반드시!라고 결의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동네 엄마들끼리 모여 밥을 먹을 때가 있었다. 동네 엄마들이 김여사가 좋아하는 걸 골라 매번 배려를 해준다. 엄마들은 이미 아이들이 커서 나처럼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없으니 뭐든 먹고싶은걸 시키라고 해준다. 이제 그것도 못하니 정말 너무나 서글픈 밤이다.
지금 메뉴를 30분째 정하고 있다. 그 틈에 나는 글을 쓴다. 세 식구의 목소리가 방 건너까지 들려온다.
연신 "너무 어렵다"를 외치는 일곱 살과 "이제 힘들어"라고 말하는 열 살이. 아이들은 자리이탈을 시도했고, 남편도 자꾸 그러면 안 한다. 너네 굶어야 해라고 평소에 안하던 반 협박을 하며 끝까지 끌고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곧 정해질 메뉴를 볼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들은 과연 나의 집밥 파업을 27끼에서 멈추게 할지 아니면 이제 집밥은 전적으로 그들 손에 정해지게 될지 운명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열 한살이가 집밥 메뉴판을 들고 결재를 받으러 왔다. 세상에!! 반은 사 먹는 음식이고 반은 가공식품이며 반찬도 없고 단일 메뉴다.환호성이 나온다. 저렇게 간단히 차릴 수 있었던 것을 여태까지 그 수고로움을 했는가 싶었다
"좋아. 엄마가 아래 썼듯이 딱 쓰여있는 것만 할 거야 주꾸미 있는 날은 딱 주꾸미와 밥 (주꾸미 먹는 날에는 계란찜에 콩나물 냉국에 밑반찬은 기본이었단 말이다)만 나가는 거야. 소룡이는 이날 굶겠네. 주꾸미 매워 못 먹는 데 알았어."
아이들 얼굴이 어둡다. 열한 살 이는 "엄마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밑반찬만 해주세요"말한다.
"그동안 사랑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으니 메뉴판 대로 해줄게" 말했다.
열 살 이는 이내 꼬리를 푹 내린다. "엄마 다시는 먹는 걸로 투정하지 않을게요 ".
두 시간 만에 파업을 철회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