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2.

40년 후에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

by 육백삼홈



It's not how much we give, but how much love we put into giving.
- Mother Teresa-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 마더 테레사-



나의 첫 조카가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

집안에서 아이가 성장하여 대학에 입학한 일이 처음이라 양가에서 많은 축하를 받았다.

나의 첫사랑일만큼 예뻐해 주던 조카 녀석의 합격은 나에게 내 아이들 만큼의 희열을 선물했다.


조카가 우리에게 합격의 기쁨과 동시에 엄마를 회상하게 해주는 일이 전해졌다.


부모님과 두 살씩 터울이 지는 세 자매, 그 중에 나는 막내딸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아주 어렵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척이나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쉼없이 일하시던 부모님의 고생에 내가 큰 어려움 없이 자라게 해 주심이 문득, 더 죄송하고 감사하게 느꼈다.


유독 학창 시절부터 잔병이 많았던 나는 장염에 자주 걸렸었다. 점심시간 마다 엄마가 교문 밖에서 죽 셔틀을 해주셨다. 죽 셔틀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열한 살 이가 그렇게 해달라면 아마도 죽 전문점에서 포장을 해서 셔틀을 했거나, 학교를 가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엄마는 일을 하러 다니셨는 일하는 중간에 와서 죽을 주시고 다시 일터로 가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죄송한 일인지 모르겠다.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엄마. 누구나 그렇듯 우리 세 자매가 슬프거나 기쁠 때마다 늘 곁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늘 그렇게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랑 함께 살던 아파트 옆집에는 어린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그 당시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엄마는 옆집 언니에게 맛있는 음식도 가져다주고, 무더운 여름 문을 열어 두면 옆집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놀다 가곤 했다. 스스럼없이 옆집 언니와 아이들, 그리고 우리, 우리 조카도 친하게 잘 지냈다. 엄마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엄마 마음에 옆집 언니를 전도하고 싶었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엄마의 전도로 옆집 언니는 지금 엄마가 다니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다고 들었다. 큰언니가 아직도 동네에 살고 있어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말이다.

조카의 합격소식은 옆집 언니에게도 전달되었나 보다. 옆집 언니는 조카를 위해 기도를 하셨고, 합격 소식에 뭐라도 해주고 싶다며 언니 계좌번호를 물어보셨다고 한다. 언니는 거절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간청을 해서 어쩔 수없이 알려 주었다고 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엄마의 마음을 기억했던 옆집 언니와 엄마의 관계는 어려운 시절 그저 음식을 나눠먹었던 사이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모에게는 남매가 있었는데 나와 동갑인 남자, 한 살 어린 여자 사촌남매였다. 지금도 외사촌들과는 한번씩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며칠 전, 여자사촌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언니 조카 합격 축하금을 좀 보내고 싶어"

"아니야, 그런 걸 보내"

"언니, 나 대학 합격했을 때 이모가 비싼 옷가게에 데리고 가서 정장 한 벌을 사주셨어. 그때 좋아하던 이모 모습이 거울에 비치던 생각이 났어"라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우리 세 자매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언제 거기까지 가셔서 조카에게 선물을 하셨을까?

우리 조카 대학에 합격하면 선물해 주어야지 하며 생활비 아껴 모아 선물을 산 것 처럼, 적은 돈에 마음은 더 몇천 배는 넣어 내가 선물을 전달했던 것 같은 그런 마음이셨겠지 싶었다.


작은언니도 한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가 서 선생(큰외삼촌 딸)이 시골에서 시내 아파트 이사 갈 때 서선생방의 커튼을 해줬다고 했다. 이것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제 전주에 사는 조카방 커튼까지 달아주셨던건지 말이다.


물론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전해진 이야기들은 이모나 삼촌이 아닌 자식들에게 그들이 경험한 이야기로 전해 들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큰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했었고, 작은언니, 나 까지 모두 대학에 보내시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 하셨던 엄마의 삶이 그저 힘들었겠다 생각했었다.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다. 물론 자식을 키웠던 엄마의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가 막내삼촌의 학비를 대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어른들로 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나 보다. 삶이 힘들고 형편이 어려웠지만 주변을 챙기고,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작은 선물에 사랑을 더 많이 넣어 나누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엄마의 마음에 감동 하고 또 그리워했다. 그리고, 내가 엄마 만큼만 살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을지 모르겠지만 훗날 우리아이들이 나처럼 내가 없을때 나의 마음을 다른사람들에게 전해져 듣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적일까, 그 어떤 재산을 남겨주는 것보다 값진 유산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엄마가 그립다. 그리고 내일도 엄마가 그리울 것이다. 이렇게 값진 유산을 남겨주신 엄마를 꼭 안아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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