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문득 내 곁에 와 있었다.

우리 아이가 처음 난청 판정을 받은 날

by 육백삼홈




햇살이 눈이 부시게 빛났던 2020년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 가을 낙엽이 너무 빛나고 예뻐 마치 영화 배경처럼 아름다웠던 날. 아이와 손을 잡고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햇살에 "엄마 눈이 부셔", "그래 참 예쁘다 그치" 평범한 대화를 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사실 점검차였다. 작년에 동네 대학병원에서 한차례 청격검사를 받았었다. 결과가 애매한 수준이니 년마다 검사해서 추적관찰을 하자는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었나 보다.작년과 다르지 않아 검사하지 말자 생각해놓고 자꾸 되묻고,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그래 어차피 일 년에 한 번이니까, 잘 본다는 곳으로 옮겨보자"는 마음으로 병원을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곳, 최종 마지막 목적지같은곳 S대학교 병원 이비인후과였다. 의사도 난청에서 제일 유명하 의사를 만났다. 간단히 검사 좀 하자고 하셨다. 검사는 쉽게 말하면 우리가 학교에서도 해봤던 버튼 누르는 청력검사. 사실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아 아이가 말로 대답을 했고 결과는 난청이었다. 그것도 경도가 아닌 중도 난청. 의사는 "아이가 말하는 거 싫어하죠?","아이가 친구들하고 말 안 하려고 하죠"물었다.


여기서 우리 6살 딸을 (소룡이:집에서 귀엽게 부르는 이모부가 지어준 네이밍)소개하면 스스로 한글도 다 읽고 거꾸로 쓰기도 하지만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야무져 유치원 에이스라 불리는 그런 아이였다. 영재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6살 귀여운 여자 아이다. 친구들과 잘 놀고 수다는 끊임없는 그런 아이.. 그냥 옆집에 있는 여섯 살 여자 아이다.


"너 몇 살이니? "한마디 물으시고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도 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인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데요'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5분도 안 만난 의사에게 내가 더 어떤 말을 할까 싶어 그냥 멈추었다.

의사는 "믿을 수 없으니 언어 평가지 받아 다음 달에 오세요. 그리고 위에 가서 보청기 신청하고 바로 끼세요" 그리고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게 나와보니 로비였다.


6년 전이다. 사실 집안에 난청이 있으면서도 아이를 임신하고 한 번도 그 생각을 못했다. 나도 나이 사십이 되면서 귀에 일정 주파수 때가 안 들리기 시작했다. 노화 시작의 과정이니 어쩔 수 없는 집 안력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이며 잘 지내고 있다. 언젠가 보청기를 착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도 생각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룡이의 난청문제가 이렇게 일찍 나에게 찾아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첫째 아들은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어서 둘째 딸아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


여기서 더 아이러니한 일은 딸아이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사회복지사였고, 장애 관련 논문을 쓰고 석사까지 공부를 하기도 했으며, 장애분야에서 10년을 일한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했던 업무 중 일부는 청각장애아동 관련 담당자였다는것이다.


사실 첫째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육아를 위해 퇴사를 결심하고 고백한 날, 딸아이의 임신 사실을 알았기도 했었던 퇴직선물 같았던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딸이 난청아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했던 일에 주인공이 우리 딸이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이렇게 쓰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가정에 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그들의 삶을 알고 있다. 일을 하면서 10년 내내 그들의 삶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조금 불편하겠지 생각했던 그 미래가 너무도 빨리 내 곁에 머리만으로 생각했던 그날이 문득, 내 곁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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