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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an 13. 2022

김밥을 보면 죽었다는 친구 K가 생각이 난다.

K는 정말 죽었을까? 아니면 사라진 걸까? 혹시 죽지 않은 건 아닐까?

누구에게나 있다는 학창 시절 첫사랑이 떠오르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 이 드라마가 그렇게 설렌다고 하니, 오랜만에 첫사랑 소환을 해볼 겸 집안일을 할 때 마다 한편 씩 보는 중이었다.

5화 말할 수 없는 비밀 편에서 소풍날 지웅이가 김밥을 사서 와 까만 봉지를 만지작 거리는 순간, 친구 웅이가 나타가 '이거 네 것'이라며 도시락을 건네던 장면이 나왔다. 순간 K생각이 났다.

그해 우리는 - 5화 말할 수 없는 비밀


K가 죽은 건 33년 전 일이다.  어린 시절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인데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K를 떠올렸다. 유년시절 살았던 곳은 경기도의 작은 소도시, 작은 학교였다. K는 전학을 왔다. 조금 통통했고  또래보다 작은 키, 짙은 눈썹의 단발머리의 소녀였다. 살고 있던 집이 같은 아파트 단지여서 등하굣길에 만나 같이 가곤 했었고, 같은 교회에 다녔다. 친한 친구의 무리는 아니었지만 종종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있다.

 

K를 떠올리면 김밥 생각난다. 가을 소풍이었을까? K와 함께 도시락을 먹게 되었는데, K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김밥 재료도 몇 개 들어가 있지도 않고, 다 터져 버린 모양새였다. 누가 물었을까? 아니면 철없던 나였을까?

"김밥이  모양이 왜 그래?"라는 질문에 '내가 김밥을 싸서 그래'라고 K는 대답했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K는 아빠와 동생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하지만 엄마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 K에게  엄마에 대해 물어본 기억도, 대답을 들은 기억이 없다. 어쩌면 엄마가 싫어서 말하기 싫었거나,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했을 수도 있겠다. 엄마의 존재 유무는 알 수 없었다.

전학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K의 가족이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K의 가족이 세 식구였는지, 네 식구였는지 모른 채 K가 죽었다는 말이 전해졌고, 우리 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K가 단짝 친구도 없었기에 그녀를 추억하며 이야기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그 시절 우리는, 죽음에 대한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게 아니였을까? K의 사고 소식을 지금처럼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았다면 여러 방법으로 소식을 찾아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어른들이 그러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조금 모자랐던아이 였고, K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친구의  김밥까지 싸오는 착한 마음과 센스가 없던 그 시절의 나, 친구의 아픔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던 나, 아니면 두 번째 소풍은 함께 가지 못해서 전해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변명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첫 아이 어린이집 소풍 생각이 난다. 소풍 도시락을 위해 이렇게 일찍 일어날 일인가? 싶을 만큼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고슬 고슬밥을 지었다. 김밥을 싸고, 계란말이로 꿀벌을 만든다며 김을 자르고, 눈을 붙인다. 살림 초보였던 그때, 어설픈 엄마 솜씨에 아이가 실망할까 조바심이 났다. 4살쯤 되었으니 한 줄도 안 되는 김밥 몇개를 도시락통에 넣기 위해  다섯 줄 넘게 말았다. 그중 제일 예쁜 모양으로 골라서 도시락에 넣어주었던 첫 소풍 첫 김밥 도시락.

새벽부터 소풍 도시락 싸느라 진을 뺏다는 이야기에 '요즘 새벽부터 김밥을 싸냐? 김밥 사 와서 고대로 도시락에 넣으면 되는데','애들 그 김밥 더 맛있고 좋아해', '김밥 한 줄 만 사면 되는데 재료비가 더 들어 사서 주는 게 나아''귀찮아서 유부초밥 샀다'는 말을 했던 동네친구들 생각이났다.

요즘은 김밥을 사서 소풍 가는 일은 너무도 흔하고, 김밥 대신 유부초밥이나 볶음밥 등의 다른 대체 도시락이 많아졌다. 심지어 도시락을 원이나 학교에서 준비하는 곳도 있다. 지금은 한 가게 건너 하나에 김밥 집이 있을 만큼 대중화 된 음식이 되었다. 30년 전만해도 그때의 김밥은 소풍의 상징이었으며, 전 날 비라도 내리면 소풍 못 갈까 봐 조바심 반, 김밥 못 먹을까 조바심 반 가슴조리며 잠 못이루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가 지금처럼 도시락이 조금 더 자유로운 시대였다면, 김밥 쌀 걱정에 소풍에 비라도 내리길 바랬을지 몰랐던 K의 마음, 자신이 싼 김밥이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했던 K의 표정, 떨림이 가득했던 목소리,그 작은 손으로 동생과 자신의 김밥을 말던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도대체 어릴 적 나는 왜 그저 그런 아이였을까? 김밥만을 보면 K생각이 날 것 같아 당분간 김밥은 먹지도 싸지도 못할 듯하다.


30년이 지난 후 드는 생각이지만 죽음이 뭔가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 당시 아무일도 없는 듯 우리에게서 조용하게 사라져 버린  K는 정말 죽었을까? 아니면 죽었다는 소문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 걸까? 혹시 어딘가에 죽지 않고 살아서 누군가의 김밥을 말고 있지 않을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를 생각하니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이겠지?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서겠지? 생각하며 수많은 질문이 꼬리를 물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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