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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ul 27. 2021

예쁘다 예쁘다 복숭아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사춘기 초읽기에 들어간 아들을 복숭아 처럼 생각하자

 등호 같은 날씨다. 그제=어제=오늘 어쩌면 내일도 같은 날씨 일 듯하다. "이렇게 더운 건 처음이야, 난 더위를 안 타는데 왜 이렇게 더워?, 나만 더워?" 모두가 덥다 덥다 입만 열만 덥다는 말만 나올 정도로 아주 무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해가 지는 저녁에도 태양의 뜨거움은 여전하다. 오늘은 너무 더워 딸과 욕조에서 물놀이를 했다. 매일 엄마랑 물놀이하고 싶어 졸라댔는데 오늘은 특별히 허락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너무 더워 퐁당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게 사실이었다. 수영장은 못 가지만 욕조안에 물 받아 놓고 들어가 앉아 있으니 세상 시원했다. 남편은 더운데 밖에서 일을 하고, 아들은 줌으로 학원 수업을 듣고, 딸과 노래를 틀고 장난치며 물놀이하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따 저녁 준비하며 혼자 더울 스스로를 위해 미안한 생각은 물 속에 넣어둔다.


물놀이와 학원 수업을 끝낸 아이들이 샤워를 마치고, 잠시 쉼을 주었던 에어컨을 다시 가동했다. 시원하게 앉아 물놀이 전에 시원하게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둔 복숭아를 꺼내 잘라주었다. 개운하게 복숭아를 한입 베어무니 입안에서 터지는 과육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아이들에게 복숭아를 잘라주고 뼈에 남은 복숭아를 먹다 보니 어렸을 때는 복숭아 씨에 붙어 있는 건 쳐다보지도 않던, 늘 예쁜 조각만 골라 먹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예쁜 조각은 다 아이들에게 주며 '이런 게 부모 마음이구나' 싶은 생각보다는 왠지 서러운 생각이 들어 아이들꺼보다 더 예쁘게 잘라 혼자 복숭아 하나를 다 먹는다. 저녁에는 남편에게도 복숭아 하나를 다 잘라서  혼자만 먹으라고 줄 요량이다.


신나게 복숭아를 다 먹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부룩 부룩 심술부리는 사춘기 초읽기에 들어간 아들이 야속하다. 나도 '저 때는 저랬겠지'싶다가도 '지금 나도 자주 그러는데 뭘 하며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싱싱하고 예쁜 복숭아도 자세히 보아야 한다. 겉으로 예쁘고 탐스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먹으려고 손으로 눌러보면 너무 익은 탓에  손가락이 들어가고, 칼로 잘라보면 상해서 뭉그러지듯 우리 아들도 지금 그런 마음인가 생각해 본다. 오늘은 그저 복숭아처럼 예뻤던 어렸을  아들을 생각하며 '예쁘다 예쁘다 복숭아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요즘은 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운 날보다  배는  마음속의 불한증막이 연일 지속되고 있지만,  여름의 무더위 끝에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불한증막에 나와 마시는 시원한 딸기우유처럼 시원하고 상콤 터지는 아들로 돌아올 아들을 기대해 본다.


독일에서 복숭아를 처음 본 순간. 어머낫. 독일 복숭아는 사랑이네 생각했었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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