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백삼홈 Sep 07. 2021

10대 사춘기 호르몬 vs 40대 호르몬

10대 아들과 40대 엄마의 사춘기

 요 며칠 기분이 요즘 날씨만큼 오락가락이다. 매일 밤 잔소리를 가장한 아빠의 다정한 훈육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주말 생애 처음으로 아빠와 아들은 베란다 문 넘어 보기만 했던 북한산 등반을 했다. 제대로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에게 정상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조금 변하지 않을까 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네 시간의 산행을 마친 아들이 그저 기특했다. 진심 어린 칭찬을 해줬다. 하지만, 칭찬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주말부터 시작해 주중 내 심기가 불편한지 불꽃 슛이라도 날릴만한 강력한 눈빛과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다크 써글, 교정으로 예뻐진 입이 툭 튀어나와 있다.


 

 매일 등교를 하던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해서 긴급 온라인 수업이다. 느지막하게 깨워 아침을 먹인다. 아침에 구운 미니 크루아상을 4개나 먹는다. 곧 수업 시간이 다가오는데 천하태평이다. 심지어 시간을 보면서 빵을 먹는다. 작정하고 늦장을 피우는 눈치다. 살아오면서 지각이라는 것을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하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순간이었지만, 아들은 내가 아니니까 참을 인 세 개를 넘어 열 개쯤 그리며, 뒤통수에도 대부분 눈이 달린 엄마들의 날카로운 촉을 세우고 아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며 집안 정리를 한다. 



온라인 줌 수업 시간 a.m.9 


아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a.m. 8:57 

아침을 먹고 식탁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a.m. 9 : 2 

욕실에서 나와 줌 수업을 켜달라고 말한다. 


결국 내 안에 참지 못한 화들이 마그마굄*처럼 괴여있다가 화산 폭발하듯 입을 통해 분출됐다.

 "오늘 수업하지 마, 수업 시간이 9시잖아." 결국 화구가 터졌다. 


- a.m.9 : 5 

전쟁이라도 난 듯 전화가 연신 울려댄다. 수화기 너머 친구들이 왜 수업 안 들어오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녀석들은 수업 시간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건지 말이다)

 - a.m.9 : 10 

줌 수업 주소를 찾았는지 닫힌 방문 넘어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왜 늦었냐고 무슨 일 있냐고 선생님께서 묻는다. 뛰어 들어가 대답해 주고 싶었다. 아니 문자라도 보내야 했나 잠시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크루아상 미니 4개와 사과 두 조각, 우유, 복제인간 윤봉구 책을 8시 57분까지 먹느라 늦었다고 말이다. 


안방에 들어와 방문을 닫고 앉아 있는데 화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집 나가도 돼? 

 - 며칠만 참자 

아들에 대한 화가 남편에게로 가기 직전이라 문자 하길 멈췄다. 

 


 사춘기의 모든 건 호르몬 때문이다. 부모들은 사춘기 호르몬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춘기 자녀가 있는 집에는 문 잠글 때 쓰는 고리가 빠져 있거나 심지어 방문이 없는 집도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그만큼 문 '쾅'의 순간들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쾅'하는 순간 부모들 마음도 '쾅'하는 소리가 요동친다. 그렇지만 아직 미성숙한 자녀와 성숙이라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부모는 달라야 하므로 사춘기에 들어선 자녀가 문을 닫는다면 문을 함부로 열지 말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사춘기 자녀가 학교를 다녀와서 인사를 하지 않더라도 인사하라 말라 하지 말라고, 그저 와서 인사해주면 반갑게 맞아주고, 인사하지 않으면 호르몬 때문에 저렇구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동안 사춘기에 대해 책과 영상을 통해 쌓은 마일리지는 전문가까지는 아니여도 초보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다.  읽고, 듣고, 보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즘은 성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성교육 과목을 추가해서 열심히 나름의 방법으로 배우며, 사춘기를 논문의 주제로 잡으라면 목차 정도는 멋지게 써내려 나갈 만큼 사춘기를 맞이 아는 아들을 대처하기 위한 분투는 오랜 시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을 참지 못해 10대 사춘기 호르몬 만만치 않은 40대 호르몬이 엄마의 화구를 통해 쏟아져 나가 그동안의 노력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나의 인격은 바닥을 쳐버렸다.


문 닫고 들어가 있는 미성숙한 아들 방문을 성숙이라는 가면 따윈 벗어 던지고 들어가 한판 붙고 싶지만, 아직도 내 안에서 아직 분출되지 않은 마그마굄이 폭발하여 비폭력주의 자인 남편이 싫어하는 등짝 스매싱이 오늘 좀 강하게 들어가지 싶어 참아본다. 

온라인 수업을 마치기 전에 어디론가 자발적 피신을 하여야 할 것 같다. 화구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용암 덩어리들은 사춘기 호르몬따윈 우습게 덮어 버릴 수 있기에 말이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준비하고 나가려고 보니 비가 많이 내린다. 양말 젖는 게 싫어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에게 최악의 날씨 조건이다. 

- 내가 아는 비속어 중 가장 센 욕을 해본다. 젠장**



*마그마 굄 (magma굄) : 상당량의 마그마가 지하에 괴어있는 것을 말한다. 맨틀의 윗부분과 지각의 아랫부분에 존재하는 암석 조각과 휘발성 물질이 포함된 높은 온도에서 녹는 용암이 고여 열에너지를 공급하는 상태.


**젠장 : 뜻에 맞지 않고 불만스러울 때 혼자 욕으로 하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다 예쁘다 복숭아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