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우리는 그를 만났다.
2011년 9월 29일
촉촉한 비가 내리던 새벽 5시 12분. '이 세상에 내가 왔노라!' 울음의 신호탄을 쏘며 아들이 태어났다. 11시간의 진통 끝에 만난 첫 아이는 경이롭고 신비하기에 앞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출산의 고통이 컸던 기억이 있다.
2021년 9월 29일
조금은 유치한 풍선이나 화려한 생일파티에는 손사래를 치고, 주변 사람들의 선물에도 예의상 거절을 할 줄 알아 버렸다. 엄마의 생일상보다는 밖에서 먹는 외식을 더 좋아하고, 생일선물로 받을 건담을 기다리며 멋지게 사진 찍고 싶어 하는 십 대의 아들이 되었다.
아이는 성장했고, 나는 조금 더 늙어감이 새삼 느껴졌다.
사춘기 모드에 들어서면서 정수리 냄새를 풍기며 안아달라는 아들을 자꾸만 밀어내고, 아직도 어린아이 처럼 구는 아이에게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러냐고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100세 시대에 겨우 11년 살아온 아이를 다 성장한 아들처럼 대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엄마 품이 그리워 동생에게 샘을 내고, 안아달라 칭얼거리고, 뽀뽀해주는 열 한살인데 말이다.
남편과 부모 되기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 했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를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시간이 된다. 아이도 처음이고,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서로 서툴지만 어른인 우리는 언제나 프로인 듯 아이에게 훈계하고, 아마추어처럼구는 아이에게 질타한 시간이 미안함과 후회로 다가온다.
생일이라고 생각되니 간단히 매일 먹던 빵과 과일의 아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부터 깨어 촌스럽게 새 밥을 하고 뜨끈한 미역국을 끓였다. 아침을 내주며 생일 축하한다고 꼭 안아줬다.
미소짓는 아들을 보니 새삼 뭉클하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는 남의 아들 보듯 넓은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이모들의 시선으로 무한 사랑을 베풀어 보려 한다.
예민한 엄마의 아들로 사느라 여전히 사랑과 고통을 받는 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백점짜리 엄마는 아니지만 늘 노력하는 엄마로 살아온 스스로에게 진한 커피를 한잔를 타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주니의 열한 번째 생일 정말 축하해! 엄마가 정수리 냄새까지 사랑해 보려고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