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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Jan 10. 2022

차라리 내가 공부해서 서울대 가는게 빠르겠어!

수포자엄가가 아들에게 수학을 잘 하게 할 수 있을까?

 열 두 살 된 아들이 마냥 아기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고, 우쭈주하지 않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머리 정수리의 냄새 일명 꼭냄(꼭지 냄새)이 나기 시작한 후부터, 아이가 엄마 하며 와락 안길 때 숨부터 참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내공이 1년쯤 되니 꼭냄 참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코를 통과하여 온몸에 깊이 맴도는 향은  장인도 못 만들어 내지 싶은 향을 남기고 떠난다.

소룡이가 '엄마, 딸기를 먹고 방귀를 뀌니 딸기방귀 냄새가 나는 것 같아'라는 말이 너무 귀여워 기록해 둬야겠다 싶어 써놓기 까기 했으면서 아들 꼭냄은 여전히 어려운 향으로 남는다. 정수리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아들 방 환기와 침구류 세탁하는 일에 더 열심을 더하고, 두피가 깨끗해야 한다는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각가지 샴푸를 경험하고, 적절한 샴푸를 찾아냈다. 더 아찔한 것은 정수리 냄새는 중학교 때가 제일 심한 것 같다며 생각보다 여자애들이 더 심하다는 헤어디자이너 선생님 귀뜸에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래', '우리 예쁜 소룡이가 커도 정수리 냄새가 날 리 없다'며 애써 부정하는 중이기도 하다.

 

 4학년 마지막 학교 상담  담임 선생님께 방학 동안 5학년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물었고, 독서와 수학이 어려워지는 5학년이니  예습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후로 이미 중학교 때부터 수포자였던(수학포기자)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내가 잘하지 못하는 공부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자?' 나름의 신조인데 수학을 이제 시작해보자고 아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니. 결국, 수학을 잘했다는 검증   없지만 무조건 믿고 보자는 신념으로 남편의 몫으로  넘기기며 부부-아들은 평화조약을 맺었다.

 

 오래 전에 우스갯소리로 대학 입시는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라는 말을 듣고 무슨 이런 희한한 말이냐며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났다. 이제 이 문장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뜻을 이제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중 해당 사항이 하나도 없는 우리에게 대학은 저 멀리에 있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 라며 이런 말을 하면 '네가 대학원까지 나오니까 그런 거야'라며 뼈 때리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 있었다. 사실 부모의 학벌과 아이들 학벌은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데 말이다. 한번은 공부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재능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공부를 강요하냐!'라고 말했다 더 혼쭐이 난 적 있다. '공부가 재능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시기가 초등학교야!' 사실 이 말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지만, 왠지 부정할 수 없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이제 나도 초고학년 현실 엄마가 되어가나 싶어 씁쓸하다.

 

우리 부모님도 고민하셨겠지만 수학공부의 방향을 잡아주지 않아서 내가 수포자가 되었을까? 잠시 생각하다 그건 순전히 내 문제라는 정답을 찾았다. 그러면 부모가 공부의 방향을 기똥차게 잘 잡아줬는데도 수포자가 되면 그때 아이는 자신의 문제라고 바라볼까? 엄마 아빠가 제대로 잡아주지 못해 수포자가 되었다고 말할까? 섬뜩함에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다.

 

아이의 수학 공부의 방향을 잡아주지 못해 오늘도 고민하며, 이럴 바에 '차라리 내가 공부해서 서울대 가는 게 빠르겠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서울대가 목표는 아닙니다. 그냥 흔히들 좋은 학교를 예를 들면 서울대잖아요. 너도 못 가고 나도 못 간 대. 주변에 간 사람들을 더러 있지만 나는 못 간 대학교 서울대)

수학이고 뭐고 오늘은 팝콘 가득 튀겨 놓고, 아들이 좋아하는 마블 시리즈나 겨울 방학내내 보여주며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해볼까? 요즘은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무척이나 우유부단한 엄마여서 괴롭고, 괴롭다. 다시 우쭈주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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