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인생을 아이에게 배웁니다.
소룡이는 잠들기 전 아직까지 엄마 옆에 누워 함께 잔다. 잠드는 일은 두 사람에게 인고의 시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통잠을 잤고 , 특별한 날 아니고서는 낮잠을 잘 자지 않았다. 문제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엄마가 낮잠을 너무 안자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라며 소아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어머님 나중에 잠이 없어서 공부 잘할 아이구나 라고 생각하세요"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많이자야 잘 큰다는 말이 있는데, 잠 많은 첫째와 달리 잠 없는 둘째는 감사히도 보통 또래의 키와 몸무게를 유지하며 잘 성장하고 있다.
어둠이 내린 밤.
매일 밤 다른 버전으로 '재미난 꿈 꾸고, 엄마가 제일 사랑해'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소룡이는 다양한 표현으로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매일 밤 고막을 녹여준다. 이런 모습에 남편은 소룡이는 탐관오리라며 놀려대지만 부러워하는 눈치다. 그동안 소룡이가 해준 말들을 오래 기억해 두게 적어둘걸 잊어버린 이야기가 많아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어젯밤 잠들기 전
"엄마는 소룡이가 엄마 딸이어서 매일 행복해"
"나는 우리 집에 좋은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
"엄마가 더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엄마! 지금도 충분히 좋은 엄마예요"
꼭 안아주고 곧 잠이 든다. 작은 숨을 내쉬며 새근새근 잠든 7살의 따듯함에 뭉클해졌다.
마흔 넘어 인생을 아이에게서 매일 배우는 듯하다.
소룡이가 보청기를 한 후 나서 단 한 번도 불편하다고 투정한 적이 없다. 엄마가 건강하게 못 낳아줘서 미안하다고 말해도 "엄마 나는 괜찮아" 라며 그저 웃는다. 7살 아이 마음속에 팔십넘은 내공이 쌓인 듯해 더 애달프다.
보청기를 착용한 지 어느새 1년이 되어간다. 앞으로 초등학교를 가고 사춘기가 되어 난청으로 엄마를 원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동안 소룡이에게 받은 사랑과 따듯함의 마일리지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소룡이의 난청을 받아들이고 나서 성장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의 난청을 원망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과 밝은 아이로 키우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것 말고도 수많은 작은 욕심이 하루에도 몇 가지씩 솟아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큰 목표에 맞게 잘 자라주고 있어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작년 이맘때 난청 진단 받던 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감정이구나 싶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남겨질 유산이 아이에게 큰 아픔이라는 자체만으로도 미안해서 많이 울었고 아팠다. 그 힘겨운 시간에 손 내밀어 일으켜 준건 소룡이었다. 누구보다 따듯한 아이의 손을 잡고 한 번에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는 주저앉지 않고, 더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었다.
지금 더 큰 바람이 있다면 소룡이 인생에 힘든 순간, 한번쯤은 따듯하게 손 잡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늘 곁에 있었으면 한다. 인생의 여러 순간 넘어져도 꿋꿋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더 멋진 내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힘차고, 재미나게 따듯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본다.
가을 햇살을 보니 지난 일 년간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아마도 가을마다 이 순간이 떠오를 것이다. 절망의 순간이었던 그때도, 감사를 하는 이 순간도 소룡이와 함께여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