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맹률 1% 임에도 불구하고 취학 전 한글 떼기에 열을 올린다.
두 아이가 모두 한글을 읽는 능력자의 엄마
날이 선선해지니 하나 둘 놀이터로 모인다. 무더위와 코로나19 탓으로 놀이터를 못 간 지 오래였는데 유치원 개학과 동시에 놀이터행이 시작되었다. 첫 아이 때부터 시작하면 엄마로서의 놀이터 인생이 무려 10년 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가끔 셋째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인생에서 20년을 놀이터에서 보낼 생각에 깜짝 놀라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이제 이 생활도 끝일 거라고 생각 했는데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엄마들이 놀이터에 함께한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절대 아닐 거라는 현실을 부정하며 아이는 신나게 엄마는 모기 보시를 하며 오늘도 놀이터다.
이런저런 묵은 이야기를 꺼내 나누다 보니 7살 아이들이 하나 둘 한글 떼기를 위해 공부방에 다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놀이터에 모이면 아이봐주시는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대충 봐도 제일 나이가 많다보니 많이 묻는다.
"소룡이가 한글 다 뗐죠? 어떻게 뗐어요?"
"그냥 혼자 뗐어. 어느 날 읽더라고, 그런데 주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뗐어. 요즘 문맹 없잖아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지만 듣는 엄마들의 표정이 뭔가 싸하다. 지금 이 순간은 마치 내가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나는 두 아이가 모두 한글을 읽는 능력자들의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글이라는 건 관심을 가지면 단기간에 자연스럽게 뗄 수 있다.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어하는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이다. 하지만 취학 전 한글을 못 떼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글씨 자체에 흥미를 못 느끼거나 글씨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왜 안불편하냐고 물으면 유치원에서는 한글 읽을 줄 아는 친구들이 다 읽어주고, 집에 오면 부모님 혹은 언니 오빠가 읽어주고, 대충 그림보고 말해도 8할을 다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영어를 모를 때 파파고를 이용하거나,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듯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9단원 중 8단원이 한글 기초 공부임에도 불구하고, 카더라 통신*에 많은 정보를 제공받는 학부모들은 취학 전 한글떼기에 이유 없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어떤 유치원에서는 주 1회 한글 골든벨을 한다고도 하고, 어떤 어린이집은 받아쓰기도 하고, 학교 입학 당시 한글을 모르면 담임이 싫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떤 것은 진실이고 어떤 것은 거짓이겠지만 이러한 현실을 보면 취학 전 한글 떼는 일에 진심일 수밖에 없고 조급함이 생기도록 조장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딸은 6살에 한글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한글을 뗐다는 말 보다 한글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11살이 된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비로소 한글뗐다. 공립유치원이었고,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집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니 더욱 그러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주로 우리가 읽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3년 동안 매일 같은 길로 유치원에 걸어가면서도 상점에 걸려 있는 간판 이름 하나도 묻는법이 없었다.
"간판에 뭐라고 쓴 건지 안 궁금해?"
"응. 안 궁금해" 해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당시 가끔씩은 애타는 순간도 있었지만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며 친절한 척 알려주던 기억이 있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7세 대부분 아이들이 한글을 알았다.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 보면 어느 요일은 저 아이가, 어떤 요일은 다른 아이가 신나게 놀고 있는 상황에서 반울음 상태로 집으로 들어갔다. 방문 교사 선생님이 집에 오시는 시간 때문이었다. 당연한 코스처럼 여겨지는 한글 떼기를 위한 방문 교사의 수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유치원의 시기가 끝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취학 전 한글 떼기를 시키지 않은 엄청난 비밀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주 단순했다. 교육에 많은 관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한글을 못 뗄까? 라는 생각과 지금은 대학생이 된 조카도 초1에 한글 떼고, 학교에 잘 적응해 다닌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니 받아쓰기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매주 10개의 문항을 매주 월요일에 시험을 봤다. 몇 번 써보지도 않고 신기하게도 대부분 백 점을 맞아왔다. 그러면서 한글 떼기가 취학 전에 해야 함이 아니라는 나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 질 때 쯤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다섯 살쯤인가 혼자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더니 7살이 된 지금은 한글 읽기를 넘어 문장쓰기도 대부분 가능해졌다. 물론, 나의 노동력은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한글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여기에 여자아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보통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과 비교해 한글을 금방 뗀다는 말이 있다. EBS에서 제작한 '아이의 사생활'프로그램에서 보면 실험에 참여한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비교해 언어지능 평균이 1.5세가량 느리다는 실험을 봤다. 오래 전 실험이긴 하지만 실험 결과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아들이 남아들보다 한글떼기가 더 수월한 편이긴 한 것 같다. 다행히 이 실험군에 속한 여아들 처럼 7살 딸은 한글을 뗐다.
이쯤 한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한글을 떼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내용 수준이나 분량을) 완전히 익힌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한글 떼기를 가르치는 일은 한글을 '완전히' 익히는 것인데 과연 어른인 나는 한글을 완전히 익히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니 그저 부끄러워 얼굴들기 민망해졌다.수많은 오타를 내는 나는 자칭오타쟁이다. 논문을 쓸때도 얼마나 오타가 많았는지 덕분에 친구들이 논문을 대신 읽고 수정해 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읽고 또 읽어도 안 보이는 오탈자, 맞춤법 애플리케이션까지 써가며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고 있지만 마흔 중반이 되어서도 아직도 한글을 다 못 뗀 듯하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한글 떼기를 시키지 않음이 다행이란 생각 들었다.
문맹을 해결하니 문해력이 발목을 잡네
'체구보다 큰 저 가방을 메고 학교에 어떻게 가지?' 생각되는 8살이 겨우 한글을 뗐더니 줄줄이 소시지 처럼 문해력이라는 것이 뒤따라왔다. 문맹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은 요즘 교육에서의 핫이슈는 바로 문해력이다. '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기본이고,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들 하는데 문해력이 예상보다 부족해 실질적으로 "실질적 문맹"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2월 EBS에서 방영한 '미래 교육 플러스'에서는 우리나라의 기본 문맹률은 1%에 가깝지만, 읽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은 75%에 가깝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이야기했다.
단순히 한글을 아는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실 한글을 떼면 다음 단계 아니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을지 모르는 단계는 영어다. 알파벳으로 시작으로 파닉스를 거쳐 세계여행이 시작되는데 이 모험과 국내 여행인 문해력을 함께 해야 한다고 하니 어른이 생각해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쉬어지고,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년에 1학년 초등학생 언니가 되어 놀이터 생활에 접어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엄마들은 이제 한글떼기를 넘어서 문해력에 대해 100분 토론보다 더 치열하고 스펙터클한 논쟁이 시작되리라 조심히 예상해 본다. 그때도 한글 다 뗀 능력자아이를 둔 엄마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다 보니 문해력은 괜찮은 거 같아"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며 싸늘함과 부러움의 눈빛을 받으며 다시 능력자아이의 엄마가 될 지 딸과 나의 미래가 궁금해 진다.
*카더라 통신 : 근거가 부족한 소문이나 추측을 사실처럼 전달하거나, 그런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사람 또는 기관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고려대 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