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무너지고, 눈물이 나면 부모도 울 수 있다.

부모라고 자식 앞에서 어벤져스가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by 육백삼홈

어렸을 때 동네에서 같이 커왔던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결혼해서 둘째를 낳았는데 장애가 있다고 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선천적인 문제로 키가 1m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우울증에 먹지도 않고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들었다. 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전해주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주변에서 정말 장애가 있는 애는 처음이라면서 말이다.


"소룡이도 있는데 왜 처음이야?"

"귀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야무지고 똘똘한 애가 뭐가 어때"

"그렇게 똘똘하고 야무진 애가 귀도 잘 들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생각하는데"라고 말했다.


아직도 소룡이 귓속에 보청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너무 예쁘고 예쁜 우리 소룡이가 왜 잘 듣지 못하는지 지금도 삼일에 한 번은 현실 부정을 한다.


아픔을 가진 아이 부모들을 만나거나 카페의 글을 읽다 보면 일단 부모는 강한 캐릭터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아이를 지켜야 하는 어벤저스여야 한다. 부모의 기운이 아이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대로 울어서도 안 된다. 어떤 상황이든지 마음 단단히 먹고 강해져야 함이 강조된다. 서로에게 그런 조언을 나누고 나 또한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아이를 볼 때마다 매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왜 하필 우리 딸이냐고 소리치고 싶고,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소룡이가 보청기를 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의 아픔 때문에 슬픈 감정,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일부러 강해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면 울고, 부정하고 싶을 때는 부정도 하고, 원망도 해야 한다. 내 안의 그런 감정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강해지는 것보다 먼저 되어야 함을 느꼈다. 그래야 나를 위로하고, 아이를 이해하고 건강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아이들은 부모들보다 더 꿋꿋하다. 더 예쁜 마음으로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건강히 잘 지낸다. 어쩌면 부모들의 노파심이 아이들을 더 걱정하게 만들고, 부모의 초조함이 아이들을 더 채근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내면 속의 내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그 탓을 타인이나 사회에게 돌린다. 그리고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아직 소룡의 보청기를 잘 알지 못한다. 겨울 내 추위 탓에 머리를 내리고 다녔지만 이제 더운 여름이 되어가니 소룡이의 귀의 보청기는 더 눈에 띈다. 묻는 이도 있었고, 묻지 않고 상상하는 이도 있었겠고, 궁금함에 물어 물어 타인에게 들은 이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직접 나에게 물었을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든 걸 받아들이고 언젠가 덤덤히 이야기하는 그런 날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소룡이 보청기를 보면서 매일, 이틀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그러다 다시 매일 마음이 무너지는 날들이 반복되더라도 그 마음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음이 무너지는 만큼 소룡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높게 쌓아 올리고 또 쌓아 올리자. 더 많이 사랑해 주며 스스로 더 많이 위로하면서 살아보고자 한다.


어버이날 받은 카드이다. 아주 아주 사랑하는 부모님 께라는 문장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다. 우리 사랑을 흠뻑 받고 있구나 싶어 고마웠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언제나 셀 수 없을 만큼 크게 되어 되돌아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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