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인의 뮤지컬 배우 도전기
뮤지컬에 대한 몇 가지 인상이 있다. 십여 년 전 뉴욕에서 <Chicago>을 처음으로 관람했다. 잘 들리지 않는 영어였지만 <Cell Block Tango>만은 재치 넘치는 가사 덕분인지 실시간으로 웃으면서 즐길 수 있었고, 그날 밤의 유쾌함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나서 몇 년 뒤에는 한국에서 <위키드>를 보게 되었다. 사전 지식 없이 친구 손에 이끌려 간 공연이었는데, 1막 마지막 곡인 <Defying Gravity>에서 거의 오열을 했다. 인터미션 불빛이 들어오는데 친구 얼굴을 보기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더이상 스스로의 모습으로 사는데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가사가 마음을 깊게 울렸다.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게 뭐길래, 두세시간 동안 앉아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울렁이는데 저 무대 위에 직접 오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 느낌을 훔쳐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직접 해보고 싶어하는 하는 성격이라, 이 호기심은 여러 단계적 시도로 이어졌다. 원데이 연기 수업이나 뮤지컬 넘버 녹음의 자잘한 경험을 이어가면서, '공연까지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세계라 어디를 찾아야할지도 모르겠고, 내 세계가 아닌 곳에 새삼 발을 내딛기가 귀찮기도 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회사 동료와 대화를 하다가 그분이 직접 공연까지 올려본 곳을 소개받았고, 마침 그곳은 다음 기수를 모집 중이었다. 모든 게 정말 아주 우연히 일어났다.
첫 4주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낯선 일을 해보여야 한다는 데에서 부끄러움이 시시때때로 밀려와, 연습 후 귀갓길마다 기분이 착찹해지곤 했다. 그래도 이때가 재밌었던 건,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연기하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알고보면 다들 어색했을지 모르지만, 그 재능은 매번 나를 감탄하게 하였다. 이 사람들이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조금씩 부끄러움에 익숙해지고나니 캐스팅 오디션이 있었고, 나는 덜컥 여주인공을 맡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배역이 무척 부담스러워 한동안 잠을 못 잘 지경이었다. 노래는 호흡이 부족해서 기대만큼 부를 수 없었고, 연기는 인물을 이해하는 것부터 녹록지 않았으며, 안무나 동선은 그야말로 백지였다. 대체로 마음은 '할 수 있을까' '잘하고 싶다' '어떻게든 되겠지' 사이에서 정신없이 널뛰었다. 희망과 불가능을 동시에 체감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를테면 제일 공감하는 인물의 대사에 마음의 닻을 내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서 설득력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누군가의 조언처럼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 연기의 본질 아니겠냐며.
그렇게 정신없이 4개월이 흘러갔다. 다른 그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오직 회사일 그리고 공연 준비에만 매달린 시간이었다(덕분에 몇 년간 도무지 되지 않던, 일에서부터 정신을 분리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마지막 4주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수한 멍과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멈출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막상 공연은 생각할 겨를 없이 지나갔다. 공연 당일 아침까지 연습과 수정이 이어졌고, 어느새 오프닝곡이 나오기 시작하면 연습인듯냥 본공연이 시작되었다. 아쉬운 실수도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실수도 있었다. 그간의 모든 시간이 이틀, 4회, 두시간여의 시간 속으로 다시 녹아들었다. 마지막 커튼콜은 공연자들과 함께 박수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목이 나가도 상관없으니 있는 힘껏 소리를 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담백할 정도로, 4개월의 시간이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의외로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시상식을 하고, 우리끼리 특별 공연을 했다. 역할을 바꿔가며 장난을 치고 망아지처럼 노래 부르고 춤추고 연기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자유로웠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온 현실은 코로나 사태와 맞물리면서 나에게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나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 모두 그 '특이함'이 주는 파괴력에 깜짝 놀라곤 했다. 그렇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에게는 그렇게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나는 유치원 학예회에서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을 뻔뻔하게 추는 끼쟁이였고, 또 해가 뉘엿하게 질 때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책벌레이기도 했다. 10대 시절 장래희망에는 '작가'를 적어내고, 20대 시절 이후부터는 이런저런 영화제를 부지런히도 다녔다. 이를테면 이 '특이한' 경험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여정에 나는 이미 올라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허무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던 도전을 드디어 해냈는데도, 뿌듯하다는 느낌이 쉽게 들지 않았다.
"진짜 배우들도 공연이 끝나면 그런 기분이 아닐까요? 모든 게 완벽하게 만족스럽기도 어려울 거고. 진지하고 열심히 할수록 더 그런 기분일 것 같아요."
비슷한 활동을 한 적 있는 동료로부터 이 말을 듣고나서야 조금은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아직 나에게 더 걸어보고 싶은, 아쉬운 여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다음 시작을 준비해보고 있다.
이번에는 연극에 도전해보려 한다. 또 이번에는 보다 진지하고 무거운 연기를 해보고 싶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어 당장은 시작하기 어렵지만,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다시 꿈꿔보려 한다. 그 사이에 이렇게 글도 써보고 말이다. 노래든 연기든 글쓰기든 모두 ‘표현하기’라는 큰 범주 안의 예술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활자로 쓰려니 많이 쑥스럽지만) 난 예술가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하나의 도전이 마음의 불씨가 되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해야 행복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에 대한 모든 근원적 질문을 하게끔 했다.
그 과정이 쉽거나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이또한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며, 길고도 짧았던 이번 도전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