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
어렸을 적 광진구에서 꽤 오래 살았다. 물론 어렸을 적에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이 광진구라는 것따위는 알지 못했다. 주말마다 아빠 손을 잡고 10여분을 걸어나가면 한강 공원이 나왔고, 번잡한 도로를 끼고 있는 인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나가면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가 있었다-나중에 보니 그곳은 건대입구였다.
나의 기억에 아로이 새겨진 것에는 많은 장소들이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소 중 하나는 테크노마트이다. 요새 강변역 앞을 지나가며 그 건물을 지나치면 그 낡음에 새삼 놀라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테크노마트는 최첨단의 상징이었다. 어쩐지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풍기는 회색 건물에는 빨갛고 파란 건물 로고가 자못 패기 넘치게 달려있었고, 건물 안에는 말걸기 무서울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아저씨들이 뭔지도 모를 각종 전자기기를 전투적으로 팔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와 이모가 나와 사촌동생을 끌고 그곳을 매주말마다 간 것은 그런 최신의 무엇과는 하등 관련이 없었고, 그저 지하의 대형 슈퍼마트에서 장을 보기 위함이었다. 장을 보고 나면 엄마들은 아이들을 몰고 13층 푸드코트로 향했다. 항상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게에 들러 엄마들은 치킨이 아닌 사이드메뉴에 있는 비스킷을 샀다. 그리고 가끔은 떼쓰는 아이들에게 넘어가 콜라도.
비스킷은 늘 따뜻했다. 우리는 비스킷을 들고 푸드코트와 같은 층에 있는 옥상 정원으로 나갔다. 옥상 정원에는 항상 도시풍이 불었고, 딱 우리 일행같은-엄마들과 아이들-사람들이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도시스러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비스킷이 식을까봐 초조했다. 바람에 음식이 날라가지 않을까 포장지를 조심스레 붙잡고는 비스킷을 약간 쪼개서 버터인 척하는 마가린과 달큰한 딸기잼을 잘 발랐다.
아 딸기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살짝 힘을 줘서 가운데를 꺾으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사각형의 몸체가 반으로 접히고 조금 더 힘을 주면 묽은 딸기잼이 그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과연 진짜 딸기는 얼마나 들어있는 걸까 의심스러운, 그 딸기향 나는 얕은 맛. 그래도 그 설탕맛을 사랑했다. 더군다나 뻑뻑한 비스킷을 먹을 때 달고 묽은 딸기잼은 너무도 소중했다. 아껴먹는다고 먹어도 꼭 딸기잼은 부족했다. 비스킷 하나를 다 끝내기에는 모자란 양이어서, 막판 즈음에는 어쩔 수 없이 뻑뻑한 비스킷만 먹어야할 때가 많았다. 다시 가게로 달려가 딸기잼을 하나 더 달라고 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 비스킷에 대한 기억이 원체 강렬했는지 광진구를 떠난 이후에도, 그래서 테크노마트를 주기적으로 들를 일이 없어진 이후에도 그 프랜차이즈만 보면 나는 늘 비스킷을 찾아헤맸다-정작 그 가게에서 치킨을 사먹은 일은 손에 꼽는다. 안타깝게도 그 프랜차이즈는 경영부진으로 매장 수가 급감해서 그건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괘씸하게도..그렇게 어렵게 구한 비스킷은 날이 갈수록 작아졌다. 내 기억이 왜곡된 걸까도 생각해봤지만, 어렸을 적 내 손바닥 위에 묵직하게 얹어지던 크기가 아무리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한들 이 크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정말 야속하리만치 작아지고, 작아졌다.
추억은 추억 속에서만 머물러야 하나보지.
옥상 정원과 바람, 그리고 비스킷과 딸기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