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끓여드릴까요?

by 와이


(먼저 이것은 ‘라면 먹고 갈래?'와 같은 달콤하고도 은밀한 유혹에 관한 내용은 아님을 밝힌다.)


할머니의 중풍 선고 이후, 시골에서 두분끼리 지내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의 변화도 있었지만 부모님 특히 엄마 입장에서의 변화가 컸을테니, 졸지에 ‘시부모살이를 하게 되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일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던 건지 흐릿한 기억을 돌이켜보면, 비록 손위 누나들이 있었지만 귀한 아들이자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집안의 모든 자원을 집중적으로 지원받았던 아빠가 부모 봉양이라는 역할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 싶다. 바꿔말하면 그런 대단한 아빠와 결혼한 엄마에게 선택지가 없었을 거란 의미이기도 하다.


두 분이 처음 이사 왔던 날이 생각난다. 집의 빈 방 하나가 깨끗하게 치워졌고 엄마는 두 분이 쓰실 나무 그릇 세트를 하나 샀다. 짙은 초록색 그리고 주황색의 밥그릇과 국그릇의 목기 세트였다. 그 색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중에는 색이 바래서 낡은 느낌이 들던 그 그릇들. 두 분이 왔던 첫날 나는 왜인지 조금 신이 나서 그 그릇에 한과를 담아내고 재롱도 제법 피웠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라면을 좋아하셨다. 정말 많이 좋아하셨다. 일찍 하교를 하는 토요일이면 시간은 점심 때였고 나는 까닭모를 의무감과 엄청난 내적 갈등을 느끼며 할아버지께 여쭤보곤 했다.

“라면 끓여드릴까요?”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럼 검버섯이 가득한 검은 피부의 주름이 접히면서 할아버지는 말했다.

“조~치!!”

할아버지는 성성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문제는 내가 라면을 잘 못 끓인다는 거다. 예나 지금이나 라면을 끓일 때의 물 양을 잘 못 맞추는데, 그러다보니 맛이 매번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았나보다. 하여간에 할아버지는 남이 끓여주는 라면이라면 만족하시는 듯 했다. 아니면 사춘기에 접어들어 퉁퉁거리는 손녀딸이 뭔가 예의바른 행동을 하는 게 좋으셨을 수도 있고. 엄마는 내가 할아버지께 라면을 끓여드렸다고 하면 어쩐지 속상해했다. 나도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속상해하는 엄마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위해 무채볶음을 요리했다. 무를 얇게 채 썰어서 들기름을 넣고 부드럽게 볶아냈다. 치아가 안좋은 할아버지는 맛도 식감도 순한 이 요리를 좋아하셨고, 엄마는 못해도 이틀에 한 번은 무채볶음을 하고 또 했다. 또 매일 새벽 국을 새로 끓여냈다. 이 또한 입이 말라 국물이 없으면 식사가 어려운 할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직장을 다녔던 엄마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국을 끓이고 반찬을 했다. 그런 식으로 엄마는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무채볶음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엄마한테 왜 요새는 그 반찬 안 해? 라고 별 생각 없이 물었다가 하기 싫다는 단호한 답을 들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해 줘? 라고 되물었다.



할아버지는 해산물도 매우 좋아하셨다. 평생을 산동네 농부로 살아오신 분치고는 희안하다고 생각했다. 잘 못 먹어본 음식이어서 그런 걸까 막연히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인 고모할머니는 종종 민물새우를 끓인 요리를 직접 해오셨다. 냄비 속에 바글거리던 주황색 조그만한 새우들이 눈에 선하다. 비린내를 잔뜩 풍기는 조막만한 것들이 큰새우와 똑같이 검은 눈이며 얇은 수염이며 뾰족한 입, 구부러진 등, 꼬리까지 완벽히 보존되어 냄비 속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다. 애초부터 나를 위한 음식이 아니기도 했지만 나는 절대 그 새우에 손대지 않았고 먹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의 일상은 나에게 지난한 세월 이 사회가 쌓아온 관습을 암묵적으로 견디게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인가 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는데, 대뜸 할아버지가 나에게 쿠션을 던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역정이 났던 이유는 내 바지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었다. 놀랐고 황당했지만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시대의 사람에게 이건 부당하다고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굳이 싸우는 공력을 들일 만한 애정이 특별히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던하게 넘겼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소한 일상은 나에게 저항감이랄까,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감정이 솟구칠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모종의 웅덩이를 하나 남긴게 분명하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할아버지가 대변했던 시대의 정신을 나는 결코 진실로 수용할 수도 애정할 수 없었다.




평생 해산물보다 고기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던 아빠는 환갑이 넘더니 어쩐 일인지 해산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고기는 너무 물려 먹기가 싫단다. 그러면서 자꾸만 생선구이나 생선조림을 먹고 싶어한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며 자연스레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빠는 자신의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엔 또 아빠만의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하여간에 아빠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일은 마냥 아름답고 따뜻하고 즐거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빠는 생선이 좋아진단다.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나는 아직도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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