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내 마음이 있다

계란말이

by 와이


계란은 얼마나 좋은 음식인가.

간편하게 구할 수 있고, 싸고, 활용도도 높다. 굉장한 솜씨가 없더라도 계란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다. 계란말이, 계란찜, 조금 더 가면 오믈렛까지. 묵은 김밥조차 계란물을 묻혀 팬에서 구우면 다시 소생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접근성이 높은 식재료인데 기쁘게도 영양학적으로도 좋단다. 계란에 대해 흔히 '완전식품'이라는 표현을 쓴다. 저칼로리에 고단백질 식품이기 때문이다. 아침 공복에 계란을 먹으면 하루 동안 섭취하는 칼로리를 줄여주고 피부와 두뇌, 면역에 좋고..여러모로 완전하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막상 계란을 가지고 요리를 하려면 한 가지 큰 난점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은 계란이 타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란을 익힐 때에는 약불에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익히는 게 중요한데, 성격 급한 사람은 이걸 못기다리기 십상이다-내 얘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샛노란 색은 못보고 갈색으로 여기저기 타버린 결과물만 얻게 된다.


재택 근무 중 일이 바빴던 어느 날, 너무도 계란말이가 먹고 싶었다. 점심시간 앞 뒤로 회의가 있고 회의에서 얘기한 내용이 많아서 전혀 그럴 여유를 낼 수 없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계란말이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정신 없는 와중에 계란말이를 시작했다. 계란 네 알을 꺼내서 급하게 껍데기를 까려니 껍데기 조각이 속절 없이 계란물에 들어가 더 애를 태웠다. 육수 같은 걸 낼 여유는 없어 생수를 급하게 들이 붓고는 거칠게 계란물을 저었다. 알끈을 제거해주면 좋은데..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하고는 포기했다. 맨 계란만으로 요리를 하기엔 아쉬우니까 대파도 조금 쏟아넣었다. 그러고는 인덕션을 켜고 들기름을 살짝 부었다. 금새 기름은 뜨거워져 어서 내가 요리할 음식을 올려달라며 김을 피워댔다. 계란물을 절반 정도 부으니, 금새 계란물이 지글거리며 끓어오른다. 아뿔싸, 불이 너무 쎘다. 인덕션은 화력이 좋아서 특히나 계란 요리를 할 때는 굉장히 온도를 낮춰서 해야하는데.


불을 낮추고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해보려 하는데, 그 사이에 업무 연락이 온다. 허둥지둥 급한대로 일을 대략 마무리하고 다시 인덕션 앞으로 돌아오니 그새 계란 부침이 만들어져 있다. 더 계란이 굳을세라 젓가락으로 급하게 계란을 말아보는데, 내 거친 손길을 따라 계란이 잘 말리지 않고 툭툭 끊어진다. 미처 잘게 썰지 못하고 투박하게 쏟아부었던 대파가 삐죽거리고 튀어나오느라 더 잘 말리지 않는다. 급했던 마음은 더욱 초조해진다. 이쯤되니 될대로 되라 같은 심정이다. 어찌어찌 남은 계란물을 부어가며 억지로 계란을 다 말고나니 처음 먹고 싶다고 생각했던 상상 속의 계란말이와는 영 멀어진 계란말이만이 남았다.

여기저기 뜯어지고 갈색으로 타서 딱딱한 계란말이를 씹으며 일도 바쁜데 괜한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그 날의 계란말이에는 성급한 내 마음이 있었다. 갈색으로 타고 찢어진 단면에는 일 때문에 심란한 내 마음이 그대로 비춰진 듯 했다. 계란이 잘 타는 식재료인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알면서도 차분하게 계란말이를 부칠 수 없던 거친 내 마음이 문제였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위해 시간을 쓰기로 결정했으면서 일에 대한 걱정을 떨구지 못했던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이 그 계란말이의 구멍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듯 했다.


그 다음 계란말이를 부칠 때는 서두르지 않았다. 껍데기를 잘 건져내고, 알끈을 꼼꼼히 풀고, 파는 더 잘게 썰어넣었다.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청양고추도 넣었다. 그리고 최대한 약한 불에서 오랜 시간 천천히 공을 들여서 계란을 부쳐냈다. 계란이 다 익기 전에 조금씩 계란을 팬에서 굴렸다. 설거지하기 귀찮다고 안 썼던 부침개도 꺼내 썼다. 아무래도 젓가락으로만 계란을 말면 꼭 옆이 터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샛노랗고, 파와 청양고추의 알알이 박힌 초록이 예쁜,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더 이상 거친 내 마음이 숨을 구멍이 없는 매끄러운 계란말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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