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은 탄수화물에서 나오지, 암

레몬 파운드

by 와이


다이어트를 할라치면 제일 먼저 줄여야한다는 게 탄수화물인데 이게 아주 고역이다. 평소에는 내가 먹는 게 탄수화물인지 뭐인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새삼 탄수화물을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면 되려 먹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어렵다. 그러면 탄수화물-당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를 말없이 행복하게 했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설탕이 너무 고프다. 흰 가루 설탕이 고픈 게 아니라, 탄수화물이 포함된 모든 것들이 그리워진다. 따뜻한 쌀밥을 오물오물 씹으면 혀 전체로 퍼지는 은은한 단맛도 그립고, 잘생긴 빨간 딸기를 입에 넣으면 달콤하게 퍼져오는 단맛도 그립고, 녹진하게 치아에 붙어오는 초콜릿의 강렬한 단맛과 기분 좋은 향도 그리워진다.


이걸 참고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탄수화물을 끊으니 성격이 더러워진다. 그리고 먹는 생각을, 탄수화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누가 인간을 고등 생물이라고 했나, 이렇게 먹는 거 하나에 온 정신이 절절 매이는데!

'인격은 탄수화물에서 나오지, 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괜히 다이어트를 결심했지 싶다.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갈등이 촉발된 것은 식탁 위에 올려진 레몬 파운드 때문이다. 그것도 저녁까지 먹고 난 뒤에 내 눈에 들어와버린 얄궂은 타이밍. 무수한 내면의 대화 끝에 나는 소심하지만 확고하게, 비닐을 뜯어서 케이크를 자른다.

세 조각이 참 앙증맞게도 흰 접시에 나란히 쌓인다. 계란맛이 충분히 나는 묵직한 빵 위에 하얗게 덮힌 레몬 아이싱의 단맛이 입안을 상큼하게 적셔온다. 여기에 따뜻하게 데운 흰 우유를 곁들이니 약간 건조했던 식감도 촉촉하게 풀어진다.

맛있다. 너무 맛있다.


안되겠다, 한 조각만 더.


그렇게 네번째 조각은 홀로 흰 접시 위에 한 번 더 얹어지고

그렇게 밤 아홉시의 즐거운 일탈은 다행히 거기에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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