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주인공인데

피자헛 레스토랑의 기억

by 와이

나는 친구를 지지리도 못 사귀는 편이었다. '지지리도' 같은 표현을 꼭 써야겠다. 거기에는 약간의 이유가 있다. 나는 친구가 없었다. 못 사귄 게 아니라 '없었'다. 책이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학교 도서관, 나는 정신없이 세계 설화집을 읽고 있다. 이미 하교시간이 한참 지난 도서관에는 사서 선생님과 나만 남아있다. 책상으로 기울어지는 저녁 빛에 서가로부터 날아온 먼지가 풀풀 날아다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밤마다 나타나는 신비한 정령이 차려주는 근사한 식탁의 묘사에 마음이 온통 뺏겨있었다. 그러다 사서 선생님이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며 내 정신을 잡아채면, 그제야 이름도 낯선 동유럽의 어느 동네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하여간에 다른 애들이라면 이미 진작에 연습하고 성공했을 친구 사귀기 자체를 나는 늦게 시작했다. 친구 특히 단짝 친구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건 3학년 즈음인 것 같다. 그 전에는 친구가 없는 외로움도, 친구랑 노는 재미도 몰랐다. 뒤늦게 뛰어든 그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뭐랄까, 나는 사교의 문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설프게 비밀 공유를 시도하다가, 입이 가벼운 아이에게 당해서 좋아하던 남자애가 어색한 얼굴로 나를 피해버리는 일을 겪기 일쑤였다.


그때 아이들 사이에는 생일 파티를 여는 풍습이 있었다. 정성껏 제작한 알록달록한 생일 초대장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려 먹인다. 차림에 케이크와 피자, 치킨은 거의 필수였다. 초대받은 아이들은 또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정성껏 감싼 선물을 들고 참석해서, 다 함께 음식을 실컷 먹은 후 동네 놀이터에 몰려나가 신나게 뛰어놀았다.


나도 그게 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 무려 피자헛 레스토랑을 예약해줬다. 그때에는 피자헛이 레스토랑으로 더 흔하던 시절이었다. 샐러드바를 주문하면 개인 접시를 나눠주고 레스토랑 중간에 있는 샐러드바에서 각종 음식을 무제한으로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기억하시는지. 마요네즈가 잔뜩 버무려진 달콤하고 부드러운 샐러드, 새콤한 토마토 드레싱으로 버무려진 차가운 파스타 샐러드, 산더미처럼 쌓인 샛노란 캔옥수수(그린자이언트의 초록색 아저씨는 늘 나의 로망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밖에 본 적 없는 낯선 맛의 미니옥수수와 내가 '타이어'라고 불렀던 블랙 올리브. 절대 밖에서는 팔지 않던, 파인애플이 알알이 박힌 옅은 녹색의 사과 푸딩. 그리고 콜라는 반드시 커다란 피처로 주문.


그 당시 피자헛의 피자는 트랜스지방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피자 밑바닥은 항상 기름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 구웠다기보다는 기름에 튀긴 느낌이었다. 그래서 피자를 손으로 집어먹으면 손끝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요새 피자는 다들 재미없게도 건강해서, 그때의 기름진 매력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잠시 옛날 피자헛의 추억에 젖어서 딴 길로 샜지만 원래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자.)

나는 고심해서 선정한 아이들에게 색색깔 크레파스를 써서 만든 초대장을 나눠주었다. 이때부터 이미 안 좋은 예감은 들었던 것 같다. 이 친구가 내가 주말 생일 파티에 부를 정도로 친한...가? 부름을 받은 이도 같은 의문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에 나는 사교의 욕망이 끓어 넘치고 있어서 애써 안 좋은 예감을 무시해버렸다.


주말이 되어 학교 후문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일단 부른 것보다도 적은 아이들이 모였다. 그 당시는 핸드폰도 없었으니 안 온 아이들이 왜 안 왔는지, 올 건지 알 도리는 없었다. 엄마와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서부터 번화가에 위치한 피자헛까지 걸어가는 길에 나는 웃기게도 무리의 제일 끝에서 혼자 걷고 있었다. 기분이 우울했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인데....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도 기분 상했지만, 다른 감정이 내 뱃속을 간지럽혔다. 내가 무리했다는 게 명백했다. 나는 비싼 생일 파티를 열어서 즐겁게 놀만큼 친한 친구도 없었고, 그 누구도 나의 생일을 그렇게 축하해 줄 마음도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바보 같았던 스스로에게 제일 화가 났다.

그날 기름이 번들거리는 피자는 맛있었고 피처에서 따라낸 콜라도 시원했지만, 그뿐이었다.




이 기억을 돌이켜보면 혀끝이 너무도 쓰다.

기껏 나를 위해 준비해준 엄마한테도 미안해서 살면서 이 감정에 대해서 그다지 입밖에 낸 적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그날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나를 위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을 욕심내지 말자. 고백하건대 지금도 잘 되지 않는 일이다. 늘 사랑받고픈 욕망에 쉽게 패배해, 헛된 꿈을 꾸고 헛된 기대를 가진다. 그럴 때면 늦여름의 더운 햇빛과 시끄러운 찻길,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홀로 걷던 그 날을 떠올린다.

다시는 그런 서툰 일은 벌이지 않아야 하지 않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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