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황홀한 소속감

떡볶이의 기억

by 와이

방과 후 하굣길을 생각하면 떡볶이가 곧잘 떠오른다. 급식에도 떡볶이는 나오고는 했지만 대용량 요리여서 그런지 항상 떡은 불편하게 불어있었고, 떡볶이 국물의 끄트머리에서는 탄내가 났다. 하굣길 간식으로서의 떡볶이는 엄격하게 말해서 즉석떡볶이와 떡볶이를 중심으로 하는 길거리 간식으로 구분된다.


즉석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은 한마디로 여중생, 여고생의 사교의 장이다. 그곳은 친한 무리가 있는 아이들만이 하교 후 입성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분식집을 출입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앞에 굉장히 유명한 즉석떡볶이집이 있었다. 아마 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그곳을 한 번 정도만 가봤던 것 같은데, 가게의 흰 벽에는 아이들이 빼곡히 적어놓은, '우리 우정 영원히'를 다짐하는 글귀들이 넘쳐났다. 여러 해가 넘도록 기록된 다정한 우정의 기록들. 시간을 초월해서 같은 또래가 남긴 이름과 기록이었지만, 나는 마치 늙은 사람 같은 마음으로 그 다정함이 부러웠다.


내게 좀 더 익숙한 것은 길거리 떡볶이다. 주문을 했는데 떡이 모자라면 아주머니는 그 즉시 새 떡과 소스를 부었다. 조금만 뭉근하게 끓여내면 금세 철판 위에 새 떡볶이가 생겨났다. 사실 떡볶이도 좋지만 나는 떡꼬치를 좀 더 선호했다. 한 번 튀긴 떡꼬치는 기름 팬 위 망에 몇 개씩 겹쳐서 올려져 있었고, 주문을 하면 아저씨는 그 꼬치를 한 번 더 튀겨주었다. 그러고 나면 아저씨는 적당히 따뜻하고 바삭해진 떡 위에 새콤한 떡꼬치 소스를 쓱쓱 발라내서 내 손에 쥐어줬다. 간혹 성의 없는 붓질로 인해, 소스가 적게 묻을 때도 있었다. 다시 해달라는 말도 못 하고, 그럴 때면 속절없이 새하얀 떡만 씹기도 했다. 떡볶이보다 떡꼬치를 좀 더 선호했던 것은, 떡꼬치가 더 바삭하고 새콤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떡볶이나 떡꼬치 외에도 트럭에서 팔던 분식에는 다른 재밌는 것도 많았다. 피카츄 모양의 돈가스라던지, 이후에 나온 방망이 감자튀김이라던가. 분식은 아니지만 그 시절에는 길가에 세워둔 트럭에서 파는 간식이 풍족해서, 지팡이 과자나 공갈 호빵 같은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팡이 과자는 동그란 주물통에서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공갈 호빵은 그 이름이 주는 악당 같은 느낌이 좋았다. 떡볶이만큼 자주 사먹진 않았지만, 그 시절의 풍경을 함께 완성하는 음식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쩌다 보니 대규모 인원으로 함께 하교를 하던 때가 있었다. 여자애들 대여섯 명 이상이 거의 매일 시간을 맞춰 하교를 하곤 했다. 늘 관계에 굶주렸던 내게 이것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항상 이들과 함께 하교를 했다. 그 길에서 떡볶이나 떡꼬치와 같은 간식이 곁들여지곤 했다. 그것조차 나에게는 황홀한 소속감이었다. 맛을 뛰어넘는 충족감이 내게는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아쉽게도 내가 제일 집이 가까워 내가 제일 먼저 무리와 작별하곤 했다-부엌 창밖으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기쁜 마음에 힘들게 뻑뻑한 창을 열어 고개를 길게 빼내고 밖을 내다보니, 아이들이 바로 우리 집 앞 길가를 지나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정말 열심히 불렀다. 그런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못 들었을까? 못 들었을 거다.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는데도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던 그 날의 짧은 기억은 늘 마음속에 회복할 수 없는 서운함으로 남아 있다.




친교에는 지금도 자신이 없는 편이지만, 사춘기로 넘어가는 그때에 나는 여러모로 취약했다. 내가 친구 사귐에 늦되었다는 초조함도 있었고,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당혹스러움도 컸다. 그러면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만 있었다. 상대의 무심함에 쉽게 상처 받고, 상대의 비판에 쉽게 흔들렸다. 그런 기억과 버무려져 있는 떡볶이는 그래서 지금도 매콤달콤한 맛 뒤로 쓰라림이 함께 올라올 때가 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다. 떡볶이, 특히 즉석떡볶이는 영양학적으로 완전 빵점짜리 음식이라고. 탄수화물을 잔뜩 압축시켜놓은 떡을 중심으로 하는 음식인데 거기다가 볶음밥까지 해 먹는 경우가 왕왕이니 말이다. 그럼 어떠한가, 그건 양옆으로 팔짱을 낄 수 있는 친구가 잔뜩 있는 '인싸'만 먹는 음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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