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의 기억

by 와이

아빠는 나랑 참 많이 놀아줬다.

어렸을 적의 내가 직접 했던 생각은 아니다. 엄마가 동생과 나를 비교해서 자주 그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부모님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후 생긴 맏이였고, 그때 부모님 모두 젊고 어렸다. 반면에 동생은 늦둥이라, 동생이 어릴 때 부모님은 나이도 보다 먹었고 한참 일하는 때였다. 그래서 엄마는 동생은 나만큼은 어릴 때 많이 놀리지 못했다고 늘 아쉬워하곤 한다.


주말 아침이면 아빠 손을 잡고 한강 공원으로 놀러 가곤 했다. 한강으로 나가는 길, 버스 차고지의 콘크리트 담벼락에는 때때로 알록달록한 선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열 개도 넘는 포스터는 회색의 부스러지는 담벼락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색은 모조리 동원된 것 같았다. 포스터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자세를 취하는 아저씨들이 자신들이 우리 동네를 구할 적임자라며 적극적으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 현란한 색들과 강렬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는 새에 유권자라도 된듯냥, 손을 이끌린 채로 걸으며 포스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그 무지개 같은 선전 포스터를 지나면 공원이 나왔다. 공원 안에는 주목나무, 소나무, 잔디 같은 것들이 잘 조경되어 있는 정원이 있었다. 분명 그 공원에서 연을 띄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 놀이도 하긴 했을 텐데, 하여간에 기억에 남는 놀이는 그 공원에서 하는 숨바꼭질이다. 주목나무 뒤로, 수풀 뒤로 나는 몸을 숨겼다. 나무줄기 사이로, 나뭇잎 너머로 나를 찾아 정원을 왔다 갔다 하는 아빠를 지켜보았다. 긴장감이 넘쳤다. 지금 안 보이겠지? 아빠의 시선을 피해 요리조리 숨은 장소를 바꿔 이동하기도 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조마조마함은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볼이 빨개진 채 한참을 아빠와 뛰어다니고 있노라면 어느새 해가 높아졌다. 그러면 아빠 손을 잡고 다시 무지개 같은 포스터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잔디에서 함부로 뒹굴면 쯔쯔가무시에 걸릴지도 모른다며 늘 걱정이었다.


집안에서도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그건 야외에서 하는 숨바꼭질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일단 실내에서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야외보다 훨씬 적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아빠와 나는 번갈아가며 술래를 맡았다. 술래가 정해지면 벽에 기대서서 눈을 감고 60초를 셌다. 50초가 넘어갔는데도 숨을 장소를 못 정했을 때는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그럴 때면 문 뒤나 침대 아래 같은, 정말 뻔하디 뻔한 곳밖에 숨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아빠는 가끔씩 정말 아빠가 사라졌나 싶을 정도로 감쪽같이 숨어버릴 때가 있었다. 실내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찾다 찾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면, 아빠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어쩌면 꽤나 분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시한 장소에 숨었다가 금세 들켜버린 날은 더욱 그랬다.


또 다른 놀이로 양탄자 라이드는 꼭 언급하고 싶다. 별 대단한 놀이는 아니다. 우리 집에는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양탄자'가 있었다. 양탄자라 굳이 부르는 것은 그 물건이 정말로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나오는 마법 양탄자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짙은 남색에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양탄자 끝에는 금색 술이 가득 달린 그런 모양 말이다. 그 양탄자 위에 나를 태우고 아빠는 크지도 않은 집을 힘차게 뛰어다녔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의 범퍼카나 썰매를 타는 느낌과 비슷했다. 서랍장을 피해서 왼쪽으로 꺾고 식탁을 피해서 오른쪽을 꺾고 방을 넘나 드느라 엉덩이가 한 번씩 들썩이고! 양탄자 라이드는 집이 복잡하고 좁을수록 스릴이 넘쳤다. 젊고 기운 넘치는 아빠는 양탄자를 이리저리 꺾으며 세상 최고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사했고, 아빠 뒤에서 나는 쉼 없이 폭소를 터트렸다. 나중에는 동생까지 합류해서, 탑승객은 2인이 되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어도 두 명씩이나 되면 무게가 상당했을 텐데 아빠는 무슨 힘으로 그 양탄자를 끌었는지 모르겠다.


주말 저녁에는 영화마을에서 비디오를 빌렸다. 우리는 주로 외화를 빌렸고 특히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영화라면 꼭 보았다. 왜냐고? 아빠가 아놀드와 판박이로 닮았기 때문이다(농담이 아니라 정.말. 똑같이 생겼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몇 번씩이나 봤고, <토탈 리콜>이나 <트루 라이즈>도 봤었다. 아놀드가 코미디 영화에도 의외로 자주 출연했다는 것을 아시는지? 그래서 <주니어>나 <솔드 아웃> 같은 발랄한 영화도 이때 섭렵했다. 마트에서 산 함박웃음 3색 아이스크림 통을 앞에 두고 밥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우리는 영화를 같이 봤다. 바닐라와 딸기, 초코-어쩐지 초콜릿이 아니라 초코라고 해줘야 할 것 같은 그런 맛-가 든 아이스크림 중에서 딸기가 제일 인기가 없어, 가운데 빨간 띠가 항상 남았다. 간혹 영화에서 야한 장면이 나오면, 나는 거실에 깔아 둔 이불속으로 추방당했지만(?) 지지 않고 빼꼼 이불을 들추고는 했다.




아빠는 학교 선생님을 했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좀 특이한 데가 있는 신임교사였단다. 수업을 하는 것보다도, 늘 방과 후에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뽈'을 차고, 밤에 학생들과 학교 건물에서 귀신놀이를 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사촌 형 같은 인상이었다고 했다. 아마 그렇게 학생들과 놀던 가락으로 어린 나와도 놀아줬을 것이다. 아빠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어른이라기보다는 같은 아이처럼. 그러면서도 힘차게 양탄자를 끌어주고 열심히 술래가 되어주었다.


생각난 김에 오늘 밤에는 물어봐야겠다.

옷걸이 뒤에 숨은 내 작은 발이 정말 안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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