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인형의 기억
발을 구르고 하늘 높이 몸을 띄우면 담장 너머로 유치원이 보였다. 우리 반의 창문도 보이고 자그마한 나무 의자라던가 알록달록한 실내도 보였다. 한 번 더 발을 구르면 더 위의 지붕도 눈에 들어오고 건물 틈 사이로 유치원 놀이터도 보였다. 어릴 적 살던 아파트의 놀이터는 내가 다니던 유치원과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여러 놀이기구 중에 나는 그네 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발을 힘차게 구르면 몸이 무중력으로 떠올랐다. 평소엔 안보이던 풍경들이 안보이던 각도에서 보였고, 나는 날아오를 듯 날아오를 수는 없는 그 미묘함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 놀이터에서 내가 즐겨하던 놀이로는 흙으로 하는 소꿉놀이가 있었다. 퍽이나 고전적인 스타일이었달까. 나뭇가지로 집기를 만들고 나뭇잎으로 그릇을 만들었다. 흙으로 채워 넣은 밥과 자갈로 만든 반찬으로 엄마 흉내를 내었다. 엄마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인지 그저 먹보 본능이 발휘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내느라 꽤나 골똘했다.
또 다른 놀이로는 총알 줍기가 있었다. 이게 무슨 놀이일까 싶겠지만, 그때에는 아이들이 BB탄총을 갖고 놀던 시절이었다. 사람에게 총알을 쏘아대는 것에는 관심이 없던 나는 대신 아이들이 흘린 총알을 줍는 데에 열중했다. 시시하게도 열에 아홉은 그냥 평범한 흰 총알이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굉장한 색을 발견해서 흥분에 휩싸이곤 했다. 파란색, 까만색, 빨간색 같은 것들 말이다. 가끔 운이 좋으면 노란 형광색 총알을 줏을 수 있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을 줍는 마음으로 예쁜 BB탄 총알을 모아서 유리병에 담아 고이 보관했다. 그 유리병은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내 책장에 놓여 있었다.
이 시절 나에게는 나의 놀이를 거의 함께하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조숙하게도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남자 친구가 있었다(하하). 시간을 스쳐 지나간 많은 친구들의 이름이 가물한데도, 이 친구의 이름은 기억에 선명하다. G는 나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위로는 누나가 둘 있는 셋째 막둥이였다. 그는 오동통한 인상이었는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어느 날인가는 조금 수줍게, 그 친구가 손을 잡았고 나도 어쩐지 수줍게 손을 잡힌 채 함께 걸었던 기억도 있다. 그 친구는 손에 수포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그 수포가 옮는 건 아닐까 걱정했더랬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주말마다 성당을 다녔고, 일요일 미사를 마치고 나면 으레 우리는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놀곤 했다. 그러니까, 당연하게 이 친구는 소꿉놀이에서는 '여보' 역할을 했고, 인형 놀이에서는 내 '친구' 역할을 했다.
특히 인형 놀이를 자주 했다. 미미 인형이라고 불리는 인형 세트 여러 개가 우리 집에는 있었다. 엄마를 졸라 내가 직접 산 것도 있었고, 사촌 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었다. 서너 개의 인형 몸체와 함께, 갈아입힐 수 있는 옷도 여러 벌이었다. 빨간 벨벳에 금 테두리가 화려한 멋진 공주 드레스도 있었고, 드라이브를 나서는 콘셉트의 상큼한 스커트 세트도 있었다. 옷뿐만 아니라 미미 인형 전용의 가구라던가 플라스틱 가방 같은 소품들도 몇 개씩 있었다. 이것들을 낮은 종이 박스에 잘 배치해두고 나는 G와 이런저런 상황극을 했다. 주로 왕자 공주 얘기가 많았다(언니로부터 물려받은 남자 인형이 하나 있었다). <미녀와 야수>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를 비롯한 아이들을 마음을 사로잡을 때여서 더욱 그런 스토리를 많이 꾸몄다. 우리는 플라스틱 유니콘을 함께 타고 해피엔딩으로 이르는 스토리를 곧잘 만들어내며 해가 질 때까지 인형놀이에 열중하곤 했다.
한 번은 약간의 사건도 있었다. 이 일요일 인형놀이에는 종종 그의 누나들도 함께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그의 둘째 누나와 셋이 놀던 때였다. 내 놀이 세트에는 동전을 모아둔 작은 플라스틱 가방이 있었는데, 한참의 놀이가 끝나고 나니 그 안에 동전이 없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누나가 수상하다고 생각했고, 고민을 하다 엄마에게 이 사태를 일러바쳤다. 엄마가 그 누나에게 물어봤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 그 사건은 그대로 일단락되었다. 그 뒤로 그 누나는 다시 나와 G의 일요일 인형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말 그녀가 동전을 가져갔는지 아니면 오해를 받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적 그럴 수 있는 일인가도 싶지만 그때에는 어쩔 줄 몰라 무섭기까지 했던 일이었다. 이 일로 G와 어색해지면 어쩌지 걱정했던 것 같다. 다행히 G와 나는 별 일 없이 계속 친하게 지냈다.
유치원 시절 앨범을 열어보면 G와 함께 찍힌 깜찍한 사진들이 많다. 우리는 유치원 학예회에서 왕자와 공주를 연기하고 있었다. 부직포 왕관을 쓴 G 옆에는 비즈가 잔뜩 달린 흰 드레스를 입은 내가 서 있다. 우리는 둘 다 앞코가 장난스럽게 올라온 부직포 신발을 신고는 발을 까닥까닥하며 말 그대로 재롱을 부리고 있다. 무슨 내용의 연극이었을까. 두 사람이 끼고 있는 흰 면장갑의 쫙 펼친 손가락은 앙증맞기만 하다.
분명 그 친구나 나나 계속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도 나는 G를 유치원을 졸업하고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친구를 만나려면 친구 부모님과의 어색한 시간을 각오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야 했었는데, 유치원 이후로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같은 동네의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던 걸까? G는 어떻게 되었던 걸까?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지금 G를 다시 만난다면 그다지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G와 함께 보낸 햇살 같은 기억이 한편에 가득하지만, 이십 년도 더 시간이 흐른 지금 꼬꼬마 시절 이성 친구를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능숙하게 할 자신은 없다. 이쯤이면, 어쩌면 그는 결혼해서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런 상상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온다.
친구야, 어디에 있든 잘 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