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기억
내 유년시절은 사람보다도 이야기로 채워진다. 사람 친구라는 것이 필요한 줄 잘 모르는 시절이 있었다. 책이면 충분했다. 책이 너무도 재밌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야말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무아지경을 자주 경험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주변이 모두 사라지고 책 속의 세계에 나는 풍덩 빠져있었다.
기억에 남는 첫 책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 시리즈이다. <소공녀>, <미운 오리 새끼>,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헬렌 켈러>, <장화 신은 고양이>, <신밧드의 모험> ,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란더즈의 개>, <작은 아씨들>, <명견 래시>...우리 모두 어린 시절 한 번은 거쳐간 세계명작들을 나는 이 시리즈에서 처음 만났다. 원전은 훨씬 양이 많은데도 어떻게 20장 남짓의 짧은 글과 삽화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책을 엮어냈던 걸까 지금 다시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도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채색 삽화가 이 책의 백미였다. 고백하자면 <소공녀>에서 세라의 착한 마음씨보다도, 그녀의 누추한 다락방에 차려져 있는 '만화 고기'가 곁들여진 근사한 저녁 식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하이디가 마시는 알프스의 깨끗한 흰 우유는 무슨 맛일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러고 나서 이 작품들을 지경사에서 나온 세계명작 시리즈를 통해서 보다 풍부한 내용으로 다시 보았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탈무드 전래 동화>, <소공자>, <허클베리 핀의 모험>, <장발장> 등을 이때 접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어린 나이에 보기에는 다소 무서웠다. 물에 불어난 시체에 대한 묘사라던가, 진짜로 주인공을 죽일 생각으로 덤벼드는 악당에게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쫓기는 내용이 있어서 그랬다.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처절한 복수극이어서 어린 마음에는 책을 읽는데 겁이 나곤 했다.
이밖에도 <장화홍련>이라던가, <무지개 물고기>(삽화의 신비롭게 반짝이는 비늘이 좋아서 손가락 끝으로 몇 번이고 쓰다듬은 기억이 난다), <꽃들에게 희망을>(심오한 주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노력했는데 허무한 결과가 나오는 거지?)같은 작품이 생각난다.
중학교로 넘어오면서 순수 문학을 다소 등한시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만화의 세계를 접하면서부터였다. 아무리 삽화가 있다고 한들, 책과 만화는 재미와 몰입도의 차원이 달랐다. 더군다나 만화의 전개는 세계명작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나는 만화 대여소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들락날락거렸다. 비디오 대여소가 있었듯이, 그 시절에는 만화 대여소라는 것이 동네 상가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1 권당 200원 정도의 대여료를 받았던 것 같다. <파티>와 같은 만화 잡지는 좀 더 가격이 있었다. 연재 중인 작품의 신작은 가게 앞편의 리스트에 적혀 있곤 해, 이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 그 종이를 매번 확인해보곤 했다. 많이 봤던 것은 순정 만화로 일본 작품이나 한국 작품을 모두 고르게 챙겨 봤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그 남자! 그 여자!> 도 봤었고, <아기와 나>나 <센타로의 일기> 같은 만화는 눈물 콧물을 쏙 빼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이미라 작가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 <인어공주를 위하여>, 신일숙 작가의 <파라오의 연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도 이때 재밌게 봤던 만화들이다.
황미나 작가의 <레드문>은 특히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나에게 남겼다. 어느 날 시작한 만화책은 너무도 흥미로워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평범한 고등학생 윤태영은 알고 보니 먼 우주 행성의 엄청난 초인 필라르였고, 그의 앞에는 불행한 운명이 놓여 있었다. 기억을 조작당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필라르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그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아즐라.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놓인 사다드와 루나레나.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와 감정선이 모두 흥미롭게 설정되어 있어, 도무지 그 끝을 보지 않고는 그 밤을 넘길 수가 없었다.
장마철이었고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나름의 자제력을 발휘해서 4권을 다시 빌려왔다. 그러나 그 4권은 두 시간도 채 안되어서 다 읽어버렸다. 그날 밤 나는 어둠을 뚫고 대여소가 문을 닫기 전까지 부모님 몰래 세 번은 더 야행을 감행했다. 빗줄기는 세차게 들이차며 샌들을 적셨고 가로등이 충분하지 않은 장마철 밤길에는 숨을 쉬려고 아스팔트 블록으로 기어 나온 커다란 지렁이가 가득했다. 나는 젖을세라 만화책들을 소중히 품고, 지렁이를 밟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어두운 빗길을 몇 번이고 내달렸다. 그래서 결국 능력을 잃어가며 죽어가던 필라르가 숭고한 자기희생을 통해 고향 행성 시그너스를 피로써 구해내는 장면을 보며 오열했다.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중학교 시절 즈음에는 또 흥미로운 사회 현상이 있었는데 바로 인터넷 소설의 여명기였다는 것이다-그렇다, 귀여니가 등장했다. 여론은 분분했다. 이것을 문학으로 봐야 하는가 아닌가. 자칭 문학소녀로서 장래 희망에도 작가를 꼬박꼬박 적어내던 나였다. 서점에서 출판된 그녀의 책을 뒤적여 보았다. 인터넷 화면상에서 볼 때는 그다지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모티콘의 표시가 무척 어색했다. 그래도 확실히 그것은 9시 뉴스에도 나올 수준의 사회 현상이었다. 그 논쟁은 마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기싸움처럼 보였다. 기성세대는 이런 건 문학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고 외쳤고, 젊은 세대는 새로운 시대의 표현이라고 맞섰다.
인터넷 소설의 하위 장르로 팬픽 즉, 팬픽션(Fan Fiction)이 있었고 이 세계에는 나는 직접 동참했었다. 나는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 몇 날 며칠을 고심해서 제목을 짓고, 스토리를 만들고, 대사를 썼다. 설정 연구를 위해 책도 보고 역사 공부도 했다. 내가 진지하게 글쓰기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한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그렇게 고심해서 만든 내용을 팬픽 카페에 연재했다. 두근거리며 카페글에 달리는 댓글을 기다렸다. 대체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조회수가 다른 연재 글보다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마냥 기뻤다.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어떻게 제목을 달면 좋을지-파란색을 쓸지, 글머리에 꺾쇠를 넣을지, 특수문자는 넣을지, 굵은 글씨를 쓰는 게 좋을지-온갖 고민을 했다. 쓰기뿐만 아니라 그 글을 어떻게 보이면 좋을지도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예상하다시피, 그 연재는 완결까지 가지 못했다. 그 소설 자체가 끝맺음을 내지 못한 채, 내 외장하드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다. 그래서 쓰기와 보여주기를 넘어서 꾸준한 쓰기의 어려움까지도 알려준 최초의 경험이었지 싶다.
이야기와 함께 자란 시간이 사실은 쓸쓸했을까? 친교의 재주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그런 아쉬움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통해 만난 내 친구들은 멋진 사람들뿐이었다. 통나무 뗏목을 타고 복수를 다짐하며 미시시피 강을 건넜고, 타고난 선함으로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자신의 행복을 찾아냈으며, 끊임없는 역경과 시련에도 자신의 희생해서 세계를 구해내는 구국의 영웅이었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자니 나는 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그 세계의 모험에 함께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온전히 이야기 속의 이야기일 수 있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