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의 가요들

가요의 기억

by 와이

딴짓하고 싶은 햇빛이 뜨겁게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쉬는 시간, 내가 자리에 앉아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 하나가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가왔다. 새로 산 앨범을 넣어왔는데 한 번 들어보겠냐며. 앨범 커버에 새빨간 벽을 뒤에 두고 미색의 옷을 걸친 남자가 앉아있는 게 제법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새빨간 색이 지금까지도 제일 기억에 남는다. CD가 플레이어 안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팽글팽글 돌아갔고, 그렇게 나는 성시경 2집 수록곡인 <선인장>을 처음 들었다. 이어폰으로 달콤하고 포근한 목소리가 느린 선율 속으로 울려 퍼졌다.

쉬는 시간의 교실은 항상 전쟁터 같았다. 10대 아이들은 짧은 시간 내에 공기 중에 가능한 모든 활력을 뿜어내며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그런 소음은 아득해졌다. 오직 세상에는 나와 그 목소리만 존재했다.

혼자 가야 할 그대의 길이 힘들 땐
나의 이름을 불러요 안아줄 수는 없지만
그대 지켜줄 수 있도록
가끔씩만 날 찾아줄 순 없나요
다른 사람 함께라도 좋아요
그대의 모습만 볼 수 있다면 괜찮아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어요
나 기다릴게요

- 성시경, <선인장>(2002)


다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아직 노래는 한참인데...노래가 절정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처음 느낀 감정이었고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교실 앞문으로 선생님이 나타났지만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들켜서 혼날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나는 결국 끝까지 이어폰을 빼지 못했다. 가요를 마주쳤던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노래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가요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전까지 나는 대중가요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어느 친구는 아이돌 팬을 하느라 열성적이었고, 어느 친구는 이름도 낯선 외국 가수의 팬이라며 그를 자랑스레 보여주곤 했지만, 전혀 딴 세상 얘기였다.

그 시절 친구들이 모여서 놀 때 우리는 노래방을 곧잘 가곤 했다. 노래방의 이름들도 기억난다-'MBC 노래방', 'SBS노래방', '고질라 노래방'(고질라 노래방은 정말 인테리어가 고질라의 뱃속처럼 되어있었다). 언젠가 조용한 성격의 친구 한 명과 고질라 노래방을 갔다. 그 친구가 노래 하나를 부르기 시작하는 데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자그마하고 말없던 친구의 어디에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숨어있었을까? 그녀는 엄청난 성량으로 박정현의 <꿈에>를 시원하게 열창했다. 그녀의 모습도, 노래도 너무 놀라웠다. 처음 발견한 내 친구의 실력도 충격적이었고, 노래도 충격적일 만큼 좋았다.

바보같이 즐거워만 하는 날 보며
안쓰런 미소로 (슬픈 미소로)
이제 나 먼저 갈게 얘기하네요
나처럼 그대도 알고 있었군요 (꿈이라는 걸)
그래도 고마워요
이렇게라도 만나줘서

- 박정현, <꿈에>(2002)


그날부터 나는 <꿈에>를 맹렬하게 연습했다. 하교 후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출력한 가사를 들고서는 몇 번이고 그 노래를 불렀다. 그 친구처럼, 박정현처럼 그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그리고 몇 주 뒤 그 친구를 포함한 친구 여럿과 다시 간 노래방에서 나는 <꿈에>를 선곡했다. 약간 눈치가 보였던 것 같다. 암묵적인 룰이 있는 느낌이었달까. 내가 친구의 18번을 훔쳤나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만큼 부르지 못했다. 내 생각엔 그랬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곡이어서, 다들 잘 불렀다며 한 마디씩 칭찬을 해줬다. 더욱 친구의 눈치가 보였다. 그렇지만 나도 그 노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박정현의 노래 말고도 내가 열심히 연습한 노래는 보아의 노래가 있었다. 보아는...아시아의 별이었다. 더 이상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가수들의 데뷔 연령이 점차 어려지긴 했지만, 그 당시 그녀의 데뷔 나이는 정말 충격적이게도 어렸다. 그녀에게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코멘트가 많았다. 최연소 데뷔, 이수만이 가장 아끼는 가수, 최초로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한국 가수, 가수 활동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학생. 특히 보아는 내 또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화제인 구석이 있었다.

보아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가수이니 그녀의 대표곡은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지만, 역시 단 하나만을 지금 고른다면 <No.1>이 될 것이다(다들 아시다시피 이 노래는 초반의 'Finally' 부분을 얼마나 외국인 느낌으로 불러주는지가 가창이 주는 재미의 팔 할을 차지한다).

어둠 속에 니 얼굴 보다가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어
소리 없이 날 따라오며 비춘 건
Finally 날 알고 감싸준 거니

- 보아, <No.1>(2002)


보아의 특기사항 중 하나는 역시 그녀의 성공적인 일본 활동에 있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그녀의 일본어 버전 노래도 연습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Amazing Kiss>, <LISTEN TO MY HEART>, <Valenti>와 같은 노래는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연습했다. 지금도 이 노래들은 일본어로 줄줄 부를 수 있다. 그 당시는 일본어를 하나도 몰랐으니, 일본어 소리가 나는 대로 가사를 한 땀 한 땀 옮겨 적어 연습을 했다. 알 수 없는 외계어를 하는 느낌이라서 말소리 자체가 주는 묘한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가사에 몇 번씩 반복되는 단어들은 절로 공부가 되기도 했다.




시간을 다시 돌려서, 내 처음이자 마지막 팬 활동의 역사를 밝혀야겠다. 대중가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적긴 했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름 스스로가 팬이라고 생각하는 가수가 있었다. 나는 god를 좋아했다. 대개 god에 입문하는 것은 MBC의 예능 프로그램 <육아일기>를 통해서였겠지만, 나는 조금 특이한 경로로 팬이 되었다. 엄마가 박진영을 좋아했고 god는 '박진영이 최초로 제작한 가수 그룹'이라는 소갯말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인 소개'로 팬이 된 셈이다. 당시 god는 보통의 아이돌과 다른 출발선상을 가진 덕분에, 그리고 대표곡들의 이미지 덕분에 점차 성공가도를 달림에 따라 '국민가수'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01년에 발매된 4집 앨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쌀쌀한 늦가을 체육 수업을 나간 반 여자아이끼리 체육 선생님을 기다리며 당시 한창 정말 '국민 가요'였던 <길>을 떼창했다. 추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서서, 동요라도 부르는듯냥 재잘거리는 노랫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왜 이 길을)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이 길에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 god, <길>(2001)


나름 팬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수보다 나는 god에 투자를 많이 했다. 그 당시 오직 팬 활동으로 나와 합심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100회 콘서트를 가고 유행하던 힙합 의류 브랜드에서 멤버들에게 선물할 액세서리도 샀다. 그 친구를 통해 손호영만을 위한 개인 팬사이트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엄마가 '너는 그렇게 손호영을 좋아해서 걔한테 시집갈 것도 아닌데 네 인생 어쩌려고 그러니' 라며 타박하세요'라며 글을 올리는, 자못 어른스럽고 돈이 많아 보이는 언니들이 많았다.

그래도 나는 김태우가 제일 좋았다. 자고로 가수는 역시 실력 아니겠냐며.




여기에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나의 10대 시절을 수놓은 가수들과 가요들은 잔뜩이다. 나는 자우림의 노래도 좋아해서 <팬이야>, <매직 카펫 라이드>, <일탈> 같은 비교적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곡부터 <파애>같이 덜 알려진 자우림의 곡까지도 노래방에 가면 쉼 없이 부를 수 있다. god와 마찬가지로 '박진영이 제작했'기 때문에 팬이 되었던 비가 '1일 1깡'이나 '삼룡이'가 되기 전, 눈웃음을 지으며 데뷔 앨범에서 <안녕이란 말 대신>을 부르던 시절도 기억한다. 장나라의 상큼한 <Sweet Dream>도 나의 한 시절을 풍미했고, 이효리의 솔로 데뷔곡인 <10 MINUTES>가 악마의 노래라며 교회에서 이 곡을 듣지 말라고 설교하더라는 9시 뉴스도 생각난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도 쟁쟁한 가수들은 많았지만, 역시 나의 기억과 추억은 10대 시절의 가요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설명도 있다. 10대 시절은 뇌의 음악적 수용성이 예민한 시기일 뿐 아니라 우리의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서, 이 당시 들었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 그리고 삶의 핵심 정서와도 긴밀한 연결고리가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10대가 2000년대였던 것에 무한히 감사한다. 한 해만 해도 무수한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를 맹렬한 연습에 돌입하게 하는 노래가 잔뜩이었으며, 직접 앨범을 구성하고프게 하는 노래도 산더미였다. 귀와 마음이 즐거운 시절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 시절 가요를 또 흥얼거려본다. 세상엔 우리들보다 가지지 못한 어려운 친구들이 많습니다...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을 그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



p.s. 왜 요새는 묻는 사람마다 소싯적 신화 팬이었다는 얘기만 듣는 건지. god 팬분들 다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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