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World

인터넷의 기억

by 와이

인터넷이 인터넷이 아니라 'PC 통신'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두 가지는 기술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개념이지만, 대충 '개인 컴퓨터에 네트워크가 연결되어서 다른 컴퓨터로부터 저장된 정보를 볼 수 있다'라는 점에서 이렇게 말해본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일단 기계음을 생각하면 된다. PC 통신은 접속을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것은 접속 시 귀에 거슬리게 울려 퍼지는 '삐-삐-치이이익-' 하는 연결음이다. 영 접속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한 피치였다. 약간의 초조함을 가지고 그 과정을 기다리고 나면 시안블루의 화면과 함께 흰 글씨가 표시되곤 했다. 지금과 같은 그래픽 아이콘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PC 통신의 제일 곤혹스러운 점은 비밀스러운 사용이 불가하다는 점이었다. 뭐냐면, PC 통신에 접속한 상태에서는 집의 전화기를 쓸 수 없었다. 방과 후 혼자 집에 있으면서 PC통신을 쓰고 있는데, 내가 뭐하는지 궁금했던 엄마가 집으로 전화라도 걸라치면 나는 대번에 컴퓨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곤 했다. PC 통신에 접속한 상태에서 수화기를 들면 수화기는 완전히 고장 난 것처럼 치직거리는 소리만 냈다. 또 PC 통신은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비쌌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도 컴퓨터를 잔뜩 쓴 것이 매달 들통나곤 했다.


PC통신 시절을 넘어서, 드디어 지금의 인터넷이라고 불릴만한 최초의 형태가 새천년을 맞이하여 우리 앞에 당도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지금은 스티브 유가 되어버린,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유승준은 ADSL 광고에서 밀레니엄 시대에 걸맞은 복장을 하고서는 TV 화면에 강렬한 눈빛을 쏘아댔다. 그 뒤로도 몇 년간 여러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출시되었고, 인기 연예인 여럿이 어쩐지 미래지향적인 복장을 하고서는 광선을 타고 날아다니며 서로 날카로운 매력을 뽐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런 복장이나 기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게 재미있는 점이지만 말이다.


하여간에 이때부터 지금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웹페이지가 등장했다. 이때 내가 열중하고 있었던 건 헥스 코드였다. 여섯 자리의 숫자 그리고 영어 알파벳의 조합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신비로운 암호였다. 흰색은 FFFFFF, 검은색은 000000였지만, 그런 단순한 색에 내 마음이 끌렸을 리 없다. 나의 관심은 주로 FF00CC, FF33FF 중 어느 것이 더 적합한 핑크색일까를 고심하는 데 있었다. 조금 더 지나 네이버 카페 같은 데에서는 이런 색상을 팔레트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했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색깔을 하나씩 고르는 '손맛'이 주는 고된 재미가 있어서 여전히 나는 헥스 코드의 세계를 버릴 수 없었다.




이런 손맛으로 만들던 추억의 사이트가 있었다. 이름조차 기억에 없는 그 사이트는 전자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트였다. 이메일 서비스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지금의 이메일 서비스와 같은 형태라기보다는 오히려 메시지를 주고받는 형태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전자 편지라고 표현한 것은 그 사이트에서 지원하던 서비스 형태 때문인데, 전자 편지는 배경 이미지와 삽입 음악, 그리고 입력한 텍스트로 구성되었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난 뒤 그 글에 어울리는 배경 이미지-주로 감성을 돋게 하는 아련한 풍경 이미지-와 삽입 음악-역시 감성을 돋우는 구슬픈 연주곡-을 고르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면 이미지와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글이 천천히 올라가는 형식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이 사이트를 나와 함께 열심히 쓰던 친구가 있었다. 사실 나에게 이 사이트는 거의 그 친구와 둘만의 기억이 있는 사이트다. 그 시절의 나처럼 문학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친구는 글을 아주 잘 쓰는 친구였다. 나와 그 친구는 정작 학교에서는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 우리가 그다지 친한 사이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전자 편지 속 우리는 죽고 못사는 사이였다. 그 친구와 나는 서로 바닥에 눌어붙은 마음까지 박박 긁어모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친구는 글을 정말로 잘 썼다. 그 친구의 편지는 훌륭한 문장과 함께 적절하게 선곡된 음악과 배경으로 나를 너무도 울렸다. 그 친구의 편지를 받은 날이면 나는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는 했다.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센 질투심이 났다. 내 편지도 그 친구를 울리고 있을까? 나는 마음을 나누고도 싶었지만, 친구를 울릴 만한 멋진 글도 쓰고 싶었다. 그런 약간의 경쟁심을 가지고 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오직 이 전자 편지를 주고받는 것 외에는 그다지 교류가 없었으므로 그 친구의 감상이 어땠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 이후에는 네이버 지식인에 한창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식인은 정말 대단한 서비스였다. 사람의 오지랖 본능을 고상하게 자극하는 훌륭한 점이 있었달까. 내가 주로 활동하던 분야는 만화였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 순정 만화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두루 꿰고 있었고, '순정 만화 추천 좀 해주세요'라는 질문글이라도 올라오면-올라오는 걸 기다리다 못해 직접 검색을 해서 애타게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직접 찾아내었다-열과 성을 다해서 답변을 적어냈다. 작가와 제목이 금방 눈에 들어오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 적어 넣고, 화풍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출판된 작품의 표지 사진을 삽입하고,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추천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다 내 답변이 1등으로 채택이라도 되면 뛸 듯이 기뻤다.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나의 쓸모를 인정받는 성취감은 그 전 시대에는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잊혔지만 라이코스도 내가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 중 하나였다. 여기에서 나는 주로 라이코스가 제공하는 웹게임을 하는 데 많은-정말 많은-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서 하는 일종의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그래픽이었지만 나는 그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주머니가 다 찬 어느 부자가 버리고 갔을 게 분명한 산삼을 금은방 골목에서 줍기라도 하는 날이면, 늘 돈에 허덕이던 나는 이게 웬 횡재람, 을 외치며 열심히 아이템을 줍곤 했다.





쓰고 나니, "라떼는 말이야"를 한바탕 적어낸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발신한 신호를 수신하며 대공감을 외치고 있을 누군가가 저밖에 필히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분명 나와 함께 쥬니버의 플래시 게임을 하느라 숙제를 놓쳐 부모님에게 혼나고, 전지현이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네이버 광고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신기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야후와 파란, 프리챌 같은 추억의 이름들을 더 발신해보며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밀레니엄 인터넷의 탐구를 되새겨본다.


잠이 안 온다면 오늘 밤, 한컴타자연습의 산성비나 윈도우의 핀볼 게임은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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