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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니 Mar 31. 2016

사치의 날



 사치라는 것이 꼭 고가의 물건이나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의 특별한 것, 예를 들면, 삼다수를 마시는 내가 오늘은 에비앙을 마신다거나, 평소엔 카스를 마시다가 어느 날엔 블랑을 사 오는 것, 자전거를 이용해서 가던 거리에 택시 타고 가는 것.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일이 되는 모든 일들을 나는 사치로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은연중에' 건네주는 부정적인 뉘앙스와는 달리,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해주는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사치스러운 날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내려 마셨고 요거트에 과일과 뮤슬리를 부어 먹었다. 고민해온 러그를 드디어 주문했고 보고 싶은 전시를 보고 왔다. 먹고 싶던 평양냉면을 먹었고 처음 먹어본 양곰탕엔 눈이 뜨였다. 첫 포크질과 함께 박수를 쳤던 디저트를 먹으며 커피를 마셨고 걷다가 들어간 상점에서 작은 귀걸이를 샀다. 아껴 읽을 책이 한 권 더 생겼고 스페인 맥주를 마시면서 새우 안주를 주문했다. 평범한 3월 속 특별한 23일인 것이니, 나는 오늘을 '사치의 날'로 정했다.

 돌아오는 길의 버스에서 언젠가 지인이 했던 말, "삼촌이 할 법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잘 들어봐"라고 시작하며 건네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말을 올해의 지침으로 삼던 시간이 떠올랐다. 행복하지 않다면 바꾸어 볼 것이고 바뀌지 못할 일이라면 떠나기로 마음먹던 그때 그 시간.


나이를 먹는 것이 서럽거나 슬프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나의 인생에 다시는 없을 20대라 생각하면 지나는 모든 순간을 잡아두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대신에 조금 더 특별해도 좋겠다 생각했다. 나의 행복을 위해 힘쓰겠다고 마음먹은 시간을 떠올리며 사치 좀 부려도 좋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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