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 되었다 - 정년퇴직 백서, 부록
공식 백수가 된 지 18일째다. 정년퇴직과 관련된 글은 그만 쓰려고 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본다. "요즘 뭐 하면서 살아?" "심심하지 않아?" "어디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어?" "백수가 과로사한다는데 자네는 어떤가?" "이제 노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지 않아?" "우울증도 온다는데 괜찮고?" 끊임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무얼 하면서 하루를 소일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왜 온갖 TV 오락프로그램에서 관음증에 가까운 사생활 지켜보기가 성행하는지 눈치챌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다.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접 경험을 하고 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나 백수 초년생 그것도 백수 된 지 며칠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상태의 벌거벗은 그 자체를 보고 듣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두리뭉실한 이야기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정년퇴직 백서 부록 편을 한번 더 써서 무얼 하며 노는지를 공개키로 한다.
그렇다고 하루의 시간대별로 촘촘히 기술하는 것은 따분하다. 그날그날의 상황에 맞추어 시간 활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영하의 기온 가까이 다가서 있다. "춥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어제 아침보다 무려 10도나 넘게 기온이 떨어졌으니 당연하다. 환기를 위해 열었던 창문도 금방 닫아야 할 정도다.
바깥 기온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생활 루틴이 바뀌는 것이 백수의 일과다. 추우니 밖으로 나가는 행위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꽁꽁 싸매고 밖으로 운동을 나갈 수 도 있으나 오늘처럼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때에는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실내에서 하는 운동으로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운동시간을 기온이 오른 오후로 바꾸거나 아예 피트니스센터로 가는 것이다. 하루의 루틴을 다시 짤 수 있는 것, 백수의 자격이자 특권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니 "저 놈은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정도로 치부해 주었으면 좋겠다.
11월 들어 세 번의 주말이 지나는 동안, 전라남도 고흥과 강원도 삼척으로 각각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고 일요일 두 번을 자연과학공부하는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훈련센터를 갔고 데일리아트라는 인터넷 매체에서 주관하는 '길 위의 미술관' 답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여 박수근 화백의 생가와 그림 흔적을 따라다녔다. 저녁식사 약속 3번에 점심약속도 3번이 있었다. 아직 백수 초년생이라 할 것도 제법 있고 오라는 곳도 조금 있는 듯하다. 아니 백수 생활 힘들까 봐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배려인 듯하다. 체력적으로도 조금 힘드네 정도를 감지할 정도다.
이렇게 하루의 일상에서 약속되어 확정된 일정에 맞추어 시간이 짜이고 나머지 시간들을 패치워크 붙이듯 이어서 스케줄표가 만들어진다. 패치워크로 이어 붙는 루틴으로는 무엇을 하는가?
제일 먼저는 평소에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공부해 온 자연과학 공부의 디테일을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다. 일요일 오후를 투자하여 들었던 강의를 다시 듣거나 매주 목요일 ZOOM으로 공부한 내용을 책과 함께 다시 보는 것이다. 지금처럼 아침글을 쓰고 남는 오전 시간을 할애하여 만나는 시간이다. Open AI를 에이전틱(Agentic) AI로 활용하기 위한 공부도 한다. 내가 일일이 손대고 머리 써서 만들어내야 하는 아이디어를 AI를 통해 보강하고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함이다. AI세계는 이미 각 분야 전문가 수준 이상을 넘어가 있다. 따라가고 이용해 보면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세계를 더 치밀하게 만들어주고 확장시켜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간간히 벽에 세워진 기타를 치는 것도 소일거리다. 유튜브에 있는 MR 영상을 틀어놓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본다. 저녁 식사 약속이 있으면 밤 8시 이후에 가던 피트니스센터 운동을 낮 시간대로 바꾼다. 피트니스센터에 가기 전에 실내골프연습장에도 들러 스윙연습도 한다. 1년에 몇 번 안 나가는 운동이긴 하지만 그때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몸을 만들어놓는다. 그래야 1년에 서너 번 싱글도 하고 핸디 10-15개 정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1시간을 골프연습장에 있는다. 스크린 골프는 안친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실내골프연습장이라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이다. 주말이면 스크린골프를 많이 치지만 나는 골프도 운동이 주목적이라 1시간 정도만 스윙을 잊지 않기 위한 연습을 한다. 그리고 다시 피트니스센터로 가서 40분 근력운동 40분 트레드밀을 뛴다. 근력운동은 하루는 상체, 하루는 하체 운동으로 나눠서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시간까지 2시간이다. 골프연습까지 하면 하루 3시간 정도 운동하는데 시간을 할당하고 있다.
보통의 하루 루틴이 이렇다는 것이다. 간간이 새로운 일이 없을까? 넷플릭스에는 재미있는 영화가 있을까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훌쩍 서울시내 마지막 단풍이 예쁘다는 소식이 있으면 슬쩍 가보기도 한다.
이런 자유와 여유, 백수가 시간 쓰는 법이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은 오직 계획하기 나름이다. 반드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냥 보고 좋은 정도의 행복은 며칠 못 간다. 목표가 있어야 이루어내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고 해내야 하는 의무감도 생긴다.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화양연화의 순간임을 내가 알아채야 한다. 그래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