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표층의 생물종 중,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쓰는 종이 거의 유일하게 호모사피엔스다. 침팬지나 까마귀 등 몇몇 종이 나무막대를 이용해 구멍 속에 있는 벌레나 개미를 끄집어내거나 돌을 사용해 조개를 깨는 등 도구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도구 사용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 ; 도구적 인간)는 인간을 정의하는 용어의 하나로 사용된다. 인간 진화사의 큰 줄기가 도구의 발달과도 연결되어 있다. 대략 돌도끼 -> 칼 -> 총 -> 컴퓨터 -> 인공지능 AI로 이어진다.
사실 인간의 삶에서 도구를 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활의 모든 것이 도구이기 때문이다. 산과 들에서 자리는 과일이나 풀을 뜯어먹고 맨발로 뛰어다니며 맨손으로 토끼와 물고기를 잡고 야생에서 살았다면 이미 호모 사피엔스는 피식자로 멸종했을 것이 틀림없다. 발가벗겨 놓으면 가장 생존 경쟁력이 떨어지는 종이다. 아니 열대우림 나무 꼭대기에서 겨우 생존을 유지하며 침팬지와 같은 이웃을 두고 사는 자연의 종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여 다른 생물 종들을 지배하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지구 생태계의 최상위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도구 없이 다른 생물 종들과 맞짱을 떠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 없으며 말이나 개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하며 사자처럼 날렵하고 힘이 세지도 않다. 오로지 도구 사용의 잔머리로 생존을 지켜온 유별난 존재가 인간이다.
이 도구사용의 잔머리가 도를 넘어 이젠 다른 종이 아닌 자신을 해치는 도구로까지 경계를 넘어서 있다. 도구가 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도구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칼도 의사가 쓰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강도가 쓰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고 세프가 쓰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되고 조각가가 쓰면 돌에서 천사를 날아오르게 한다.
칼보다 더 무서운 도구가 있다. 경찰청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이 도구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만도 2023년 한 해 2,551명이나 죽었으며 177만 명이나 다쳤다. 하루에 7명 정도씩 죽었으며 4,800명 넘게 다치게 한 비인간적인 무기라 할 수 있다. 역사상 벌어진 웬만한 국지전쟁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 매일 발생한다. 바로 자동차 교통사고다. 세상이 이런 흉악한 도구가 또 있을까?
숫자만 놓고 본다면 당장 전 자동차를 폐기 처분하여 사망자 수와 부상자 수를 없애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지금도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안 한다.
바로 도구의 경제적 가치가 피해를 주는 범위를 넘어서면 사회적 합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법을 만들어 시스템화하고 규제하여 비인간적 도구가 도로를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차선을 긋고 교통표지판과 신호등을 설치하고 안전벨트를 하게 하는 한편, 자동차에도 각종 안전장치와 사전 경고등 등을 장착하게 하여 사고율을 최소화하고 방대한 교통법규를 만들어 약속을 지키도록 하며 그래도 만약을 위해 보험제도까지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도구의 효용성이 생명의 안전을 담보하는 쪽으로 계속 도구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동수단에서 자동차를 빼놓고는 생활이 안 되는 시대이기에 그렇다.
세상의 모든 도구는 빛과 그림자를 품고 있다. 도구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림자가 따라온다.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경험치에 달렸다.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해 보고 효용성을 검증해서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도구사용을 해야 한다. 그림자 때문에 레드플레그를 남발해서는 밝은 빛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만지고 들여다보고 경험해 봐야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어떤 기능이 훌륭하고 어떤 기능이 조금 모자랐는지 알 수 있다. 도구는 뭔가를 하는데 쓰자고 만든 것이다. 써봐야 알고 써봐야 할 수 있다. 도구는 써서 활용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AI 도구의 엄청난 기능도 내가 써봐야 내 것이 된다. 당장 휴대폰이나 랩탑을 열고 AI라는 도구에 말을 걸어보라.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