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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하여

by Lohengrin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인간이라는 존재로 세상에 등장한 것조차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의 의지와 행동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황당함 위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가 삶이다. 그리고 그다음 모든 것은 기타 등등 벌어지는 현상의 순간순간이 이어져 나갈 뿐이다. 그렇게 지구표층에 생명이라는 옷을 입었던 모든 존재들의 숨이 모였다 사라지고 다시 뭉치고 흩어짐을 반복한다. 그것을 생명현상이라 한다. 그것도 지구라는 행성에서만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이다.


순간순간의 장면이 모여 연결이 되면 흐름이 되고 패턴이 된다. 그때서야 현상을 설명하고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를 관계라 한다. 불가에서는 시절인연이라 한다.


연결되지 않으면 산산이 흩어진다. 사막의 모래알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연결의 고리, 시간이다. 없지만 있다고 믿어야 그때서야 의미로 떠오른다. 사기인 줄 알면서, 속는 줄 알면서도 믿는다. 믿다 보면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모든 믿음의 속살이다. 사기의 사기는 사기이고 거짓의 거짓은 거짓이지만 사기와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의 아이러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어찌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칼을 들이대고 조작을 한다. 돌에 새기면 영원할 줄 알고 종이에 써 놓으면 오래갈 줄 안다. 인간의 시선일 뿐이다. 시간차이일 뿐이다. 그것도 지구의 시간에서만 그렇다.


생명이 태어났네 죽네 사네 힘드네 즐겁네 등등의 생로병사는 지구표층 껍데기에서만 벌어지는 작은 현상일 뿐이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라. 지금은 태양 빛에 가려지고 구름에 숨어 보이지 않지만 수성과 금성과 화성과 목성과 토성과 해왕성도 있고 1천억 개가 넘은 항성이 흩어져있는 은하수가 있다. 이 은하수조차 1천억 개가 넘는 우주의 은하 중에 한 무리일 뿐이다. 인간은 그저 밤하늘의 빛나는 별의 감성으로만 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져 있다. 어찌할 수 없었기에 감성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동안은 그랬다. 허블우주망원경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칼세이건이 보이저호의 카메라를 뒤로 돌려 '창백한 푸른 점'을 찍어 눈앞에 들이밀었을 때에서 야 인간 현상의 허상과 옹졸함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어떻고 미움이 어떻고 전쟁이 어떻고 계엄이 어떻고의 그 모든 것이 '창백한 푸른 점'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음을 보게 되는 순간, 겸손해지게 된다. 아웅다웅해봐야 한 점 먼지 속에서 벌이는 찻잔 속의 태풍일 따름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태양계의 중력법칙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 인간의 시간, 그것도 지구표층에서만 유효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살아남으려고 생존이라는 처절함을 들이대며 버텨낸다. 늙지 않으려고, 건강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친다. 지구표층에서만 벌어지는 시간의 굴레다. 달에 찍힌 닐 암스토롱의 발자국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과 탄생과 죽음의 모든 현상은 지구 표층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사건일 뿐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졌다고 존재 자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내버려 두지 못하는 것 또한 인간이 가진 특질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계속 도전을 하고 다음 세대에서 이어서 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 그래서 상황을 바꾸고 기어코 인간의 조건에 맞는 사물들을 만들어내고 적응하는 힘, 그것을 창의력이라고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존재라는 경계를 허물기 위해 도전하는 힘,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해보는 지구력과 추진력의 상상과 꾸준함이, 우주의 변방에 있는 은하계 속 더 들어가 태양계의 지구라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에 프리즘을 들이대게 했다. 그리고 현상의 일부분이지만 설명하고 이해하게 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 현실의 시간에 들어오면, 어찌할 수 없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외투를 싸매는 자신을 보게 된다. 태양빛의 세기를 막고 있는 구름과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의 각도가 만들어내는 계절과 낮과 밤의 길이는 지금 내가 적응하고 버텨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이자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생존하고자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고 심지어 거짓과 음해를 서슴지 않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해답은 시절인연처럼 만나게 될 터이다. 나는 이미 해답을 구하는데 삶에 절반이상의 시간을 보냈기에 곧 정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알고 나면 별거 아닌 것에 허무해질지도 모른다. 지구표층에서 생명이라는 실체의 형상을 유지했다 다시 원자의 세계로 환원한 모든 존재와 현상들에게 경이를 표하게 된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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