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이번 주말에 무얼 하고 싶은가?"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할 것이다. 복작거리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가 감자옹심이 박혀있는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과 마주하고 싶고, 미리 계획했다면 바다 건너 제주나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나 동남아라도 다녀오고 싶어 할 것이다.
여행은 왜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생의 버킷리스트로 작동하고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집 떠나면 돈을 길에 깔고 가는 것과 같음에도 기꺼이 지불할 용의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왜 가고 싶냐?"라고 물으면 딱히 명확한 답변을 듣기도 쉽지 않다. "그냥"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다. "그냥 가면 좋잖아. 여긴 추운데 거긴 따뜻하고. 꼭 여행 가는데 이유가 있어야 돼. 그냥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즐기면 되는 거 아니야!"
가장 명쾌한 대답일 수도 있다. 우문현답이다.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여행하고 돌아오면 뭐가 남을까? 무얼 버리고 왔고 무얼 담아 왔을까?"
돈을 버리고 사진과 마그넷을 담아왔다면 가장 원초적인 답변일 것이다. 사진 속에 박제시켜 온 현지의 풍광과 음식만이 유령처럼 잔상으로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지인과 인사말이라도 섞어 본 여행자는 몇 명이나 될까? 휴대폰 통역기가 너무도 훌륭한 관계로, 먹고 버티기 위한 생존단어라도 몇 개 외우고 갈 필요성조차 없어진 요즘이다. 굳이 현지언어 단어를 익히지 않아도 된다. 돈을 쓰는 여행자의 특권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설득하고 이해시켜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언어가 필요하지만 돈을 손에 쥐고 쓰는 사람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내 맘에 안 들면 안 사면 된다. 현지 언어 한 마디 몰라도 영어를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영어 대화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문장도 아닌 단순 명사 몇 개 던져보고 그마저 알아듣지 못하면, 영어도 못 알아듣는다고 타박한다. 해외여행이랍시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태다.
돈만 쓰고 남는 게 없다. 따뜻한 해변과 시원한 인피니티 풀 썬데크에서 누워있던 생각밖에 안 난다. 시간이 지나며 지워져 가는 기억을 다시 살리기 위해 마약처럼 다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이 무한루프를 도는 환상열차가 된다. 그것도 주머니에 돈 있을 때 이야기다.
여행은 왜 설레는가?
우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그렇다.
여행지 자료를 검색해 볼거리와 맛집 등을 구글지도에 표시해 놓고 역사와 문화, 지질까지도 찾아서 공부를 하지만 그 자료는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 자료 나머지는 우연의 만남 속에 있다. 무엇을 만날지, 무엇을 볼지, 맛은 어떨지는 닥쳐봐야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모르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이 두려움은 가벼운 흥분으로 작동하고 처음 접하게 되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나중에는 알고 싶어지는 충동과 마주한다.
여행은 이렇게 우연의 설렘을 경험하는 현장이다.
자연의 광활함 앞에 서 있다면 그 빈 공간의 하늘과 라피스 라즐리의 색상을 담은 바다의 색과 만나야 한다. 텅 빈 시공이 태초의 순간임을 느껴야 한다. 히말라야의 장엄한 설산이나 칼라하리 사막의 끝없는 모래언덕 현장은 사진에 담기는 것이 아니라 5억 년을 진화한 머릿속에, 가슴에 남겨져야 한다. 위대한 건축물과 예술품, 미술품 앞에 서 있다면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거친 호흡과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의 시선이 아닌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생각으로 말이다. 우연이 부르고 우연과 마주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다음에서야 비로소 여행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여행의 결과물이다.
찍어서 보여주고 보이는 것은 하수의 여행법이다. 우연을 만나 필연으로 치환하는 과정이 고수의 여행법이다.
시(詩)가 파블로 네루다를 부르는 것처럼 여행이 나를 부를 때 화답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 (중략)"
내가 여행을 가는 게 아니고, 여행이 나를 부를 때 나서야 한다. 우연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그렇게 몽유병 환자처럼 길을 나서고 우연의 연관성들이 실타래처럼 현실로 드러남을 발견했을 때에서야, 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은 그렇게 심오한 우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