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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소식에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

by Lohengrin Mar 14. 2025

봄이 오고 있는 중이긴 한 모양입니다. 제주 및 남도에는 이미 봄이 상륙했을 테지만, 제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 현관옆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목련나무는 가지 끝마다 털옷을 입고 있던 꽃몽우리들이 이제야 털옷의 단추를 풀고 있습니다. 한 겨울 내내 입고 있었으니 무거울 만도 하고 꽁꽁 싸매고 있었으니 이제는 더울 만도 할 겁니다. 밖에 나가며 들어올 때마다 목련나무에 눈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습니다. "털옷은 언제 벗을 거니?"


양지바른 아파트 귀퉁이 뜰에는 이미 연초록의 무명초도 올라왔고, 베란다 화분에 숨어있던 클로버는 어느새 화분 주인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키가 더 커져 있어 뽑아버려야 할 만큼 봄의 시간은 이미 다가와 있습니다.


봄은 생명의 기적이고 환희입니다.


그 근원은 온도이며 온도의 근원은 태양이고, 23.5도 기운 지구의 형상 덕입니다. 우주가 빚어내는 기운에 생물이 만들어지고 생명이 깃듭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자연의 환경 속에 만들어진 계절을 버텨내고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구의 기울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온도의 변화 추세를 계절이라 합니다. 지금은 생명의 에너지를 최소화했던 겨울을 지나, 생명의 환생을 깨우는 물소리 빗소리에 기지개를 켜는 시간입니다. 온도가 전자의 움직임을 점점 가속화시킵니다. 이제 움직이라고 말입니다.


아파트 뜰을 정리하고 있는 관리인을 보다 보니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집 마당에 화단을 가꾸셨습니다. 사계절 언제나 마당 한편에는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는 개나리도 피었고 철쭉과 수국도 피었고 라일락도 향기를 전했습니다. 여름에는 백일홍, 달리아도 있고 여름 내내 배롱나무는 꽃을 보여주었으며, 가을에는 코스모스, 겨울에는 꽃나무 사이사이에 눈꽃이 피었습니다. 울타리 밑에는 덩굴장미를 심어 장미꽃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화사한 능소화도 사이사이에 피어 자태를 뽐냈습니다.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귀가하던 어두운 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코끝에 전해오는 라일락 향기는 곧 집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등이자 어머니의 향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라일락과 배롱나무 꽃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질풍노도의 시절, 어머니가 가꾸신 화단의 꽃들이 전하는 향기는 끓어오르는 무모함을 진정시키는 감성의 마약이었습니다. 화단을 가꾸시면서 한 번도 꽃에 물을 주라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화단의 흥망성쇠는 오롯이 어머니 몫이셨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 외에는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자 들어가서는 안될 소도처럼 보였습니다. 그저 화사한 꽃을 보고 꽃이 전하는 향기만을 맡을 뿐이었습니다. 비 내리는 여름날 오후 마루에 엎드려 비를 맞고 있는 화단의 꽃들을 봅니다. 빗줄기를 맞아 일렁이는 꽃물결 위로 알알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자체가 무릉도원이 됩니다. 나이 들어서야 그 광경에는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겠지만 10대 청춘의 감성엔 제니스 이안(Janis lan)의 'at seventeen'의 멜로디가 겹쳐지고 가사 속 왕따당한 소녀의 모습이 배경처럼 깔립니다. 


집 마당에 화단을 가꾸면서 자식의 심성을 컨트롤하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그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어머니의 꽃 사랑은 베란다로 이어졌습니다. 화분으로 베란다가 채워져 나갔습니다. 하루 소일거리 하나가 베란다 화분에 물 주고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셨습니다. 꽃나무들을 실내로 끌고 들어왔으니 물을 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이 해야 할 임무로 여기셨습니다. 생명에 대한 예의이자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자연으로 돌아가시고 베란다 화분 관리는 아내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다행히 와이프도 꽃을 좋아하는지라 때만 되면 동네 화원에서 꽃화분을 사가지고 들어옵니다. 베란다의 꽃들이 점점 다양해집니다. 결혼하고 와이프가 있는 학교로 꽃바구니를 선물로 보냈다가 "뭐 하러 꽃을 보냈느냐?"는 핀잔 같은 한마디가 '좋다'는 뜻인 줄 모르고 그 후로는 꽃선물을 중단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었습니다. 한번 보고 시들어 버리는 꽃바구니가 아니고 계속 피어있는 꽃화분이 더 좋다는 뜻이었는데 말입니다.


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입니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데 스스로 할 수 없으니 매개체를 유인하는 위장전술의 극치로 사용하는 게 꽃의 유혹입니다. 이제 곧 불현듯 꽃들이 곁에 와 있을 겁니다. 주말에는 꽃을 만나러 베란다가 아닌 남녘의 들로 내려가봐야겠습니다. 이번 주말엔 매화도 피고 산수유도 피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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