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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할 줄 모른다

by Lohengrin Mar 13. 2025

강의가 끝났다. 질문하란다. 그런데 아무런 질문이 없다. 재차 묻는다. "혹시 궁금한 것이 있거나 강의내용과 다른 생각이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질문하세요". 그래도 묵묵부답이다. "질문 없으면 강의 종료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차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의를 너무 잘해서 그런가? 아니면 재차 물어봐야 뻔한 답변을 들을 것 같아서 묻기를 포기한 걸까? 아니면 개인적 의문인데 질문했다가 망신당할까 봐 염려되어 함구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빨리 점심식사하러 식당에 가야 하는데 좀 늦으면 줄을 길게 서야 하는 초조감에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정말 무얼 물을지 몰라서 그런 걸까?


질문이 없는 강의나 포럼, 주제 발표회, 공청회는 아무 의미 없는 요식행위다. 일방적 지식 던지기이다. 쓸데없는 시간 죽이기다. 질문자를 지정해 놓고 짜고 치는 고스톱인 회견도 마찬가지다.


질문(質問 ; question)은 "모르거나 의심 나는 점을 물어 대답을 구하는 것"이다.


일단 질문을 던질 청강자의 위치에서 보자.


질문도 알아야 할 수 있다. 모르는 것이나 의심 나는 것을 묻는 게 질문인데 '알아야 한다'니 뭔 궤변이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야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은 관계를 정의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고 사유했던 사건과 행위의 전개에 있어 다른 확률로 전개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성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정답을 물을 수도 있지만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질문을 하는 행위다.


질문은 관심이다. 궁금해야 한다. 호기심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질문은 그다음에 나온다. 자기의 경험과 지식의 축적과정에서 쌓아놓은 지혜의 창고와 비교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때서야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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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무 상관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데 질문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막 던진다고 질문이 아니다.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본질적이어야 하며 맥락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잘 던진 질문은 질문에 해답을 품고 있다. 중앙대 독어공문학과 김누리 교수가 던진 "한국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위대하고도 허약할까?"라는 질문이나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 같은 거다. 질문의 위대함이 담겨있다.


묵직한 질문만이 질문일 수는 없다. 작은 질문일지라도 관심사에 천착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것이라면 묵직한 종소리가 된다. 질문은 몇 날 며칠을 품어야 한다. 가슴에 담고 있으려면 질문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아둘 수 있는 고리들이 있어야 한다. 바로 공부를 통해 그물망을 펼쳐놓고 있어야 한다. 공부와 지혜의 그물망이 엉성하면 질문조차 걸려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모른다는 거다. 알고 모름의 영역에 제각각의 경계가 다름을 인정한다고 쳐도, 뭘 물어야 할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물을 준비조차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묻는다는 행위는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일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묻기보다 그 사건과 현상으로 인해 펼쳐질 미래에 대한 물음이어야 한다. 토론 중 싸움을 하는 경우를 들여다보면 과거와 현재에 대한 해석의 이견 차이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래에 대해 물으면 의견을 낼 수는 있으나 반박하고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질문은 답변을 합의하기가 좀 더 쉽다.


무엇을 물을지 모르겠다면 자기를 바닥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나의 미래에는 어떤 도움, 어떤 방향을 제시할 건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산다는 것은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벌써 점심식사로 뭘 먹을까?로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무엇을 먹을지 아직 고민 중이라고? 배가 덜 고파서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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