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창고에 있던 가방을 하나 꺼냈다. 이 가방이 세상밖으로 꺼내져 햇빛을 본지가 언제인지 가늠되지가 않는다. 대략 10년은 넘은 듯하다. 다행히 비닐커버에 넣어져 있어서 그런지 먼지가 쌓여있지는 않다. 창고 선반 맨 위칸에 있어 까치발을 하고 가방을 내리는데 묵직하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내린다.
비닐을 벗기고 가방을 열었다.
손때 묻은 니콘 D90 DSLR 카메라 1대, 니콘 F801 필름 카메라 1대와 니콘 70-210mm 줌 렌즈 하나, 니콘 24-50mm 광각 렌즈 하나 그리고 니콘 35--70mm 렌즈 하나 그리고 니콘 SB26 스트로브 플래시 하나가 들어있다.
언제였을까? 이 카메라 가방이 창고로 들어간 때가?
DSLR 카메라는 충전식 배터리인데 방전되어 있다. 충전기가 있으려나? 다행히 전자기기들을 모아놓은 상자에 있는 충전기를 찾아 배터리를 끼워본다. 다행히 전원버튼이 깜박인다. SD카드도 카메라에 끼워져 있다. 이것을 열어보면 언제 마지막 촬영을 했는지 알 수 있을 터다. 그런데 SD카드 리더기를 못 찾겠다. 일단은 카메라 배터리가 충전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한다.
이 DSLR 카메라를 산 것은 20년 정도는 된 듯하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전환되던 시기에 샀으니 대략 2000년 초반인 듯하다.
또 하나 있는 필름카메라는 내 손에 들어온 해를 정확히 기억한다. 1995년도다. 이 카메라는 돈 주고 산 것이 아니고 사진작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 해 연도에 내가 다니던 그룹이 창립 50주년이라 해외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찾아가 세계를 개척하는 모습을 사보에 담는 기획을 했는데 중국 편을 내가 맡아서 당시 유명사진작가와 함께 중국을 일주했었다. 홍콩에서 시작하여 상해를 거쳐 청도, 천진, 북경을 지나 대련까지 가는 중국 동해안 일주 촬영이었다. 열흘이라는 빠듯한 일정 속에 움직였는데 당시 사진작가께서는 카메라를 3대를 들고 오셨다. 물론 당연히 필름카메라다. 그중 한 대가 뷰파인더 창을 들여다보면 노출 및 셔터스피드를 숫자로 알려주는 알림판에 문제가 있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불편이 있었다. 사진작가께서 "2년 조금 넘었는데 이제 버려야 할까 봐"라고 하셔서 농담 삼아 "버릴 때 저한테 버리세요"했는데, 중국여행이 끝나고 사무실로 카메라를 들고 오셔서 수리해서 쓰라며 정말로 나한테 버리고 가셨다. 그렇게 필름 카메라가 내 손으로 넘어왔다.
필름카메라는 배터리 교환방식이다. 30년도 더 된 카메라인지라 배터리를 새로 교환해도 전원이 먹통이다. 이것을 수리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해본다. 카메라에는 코닥 ISO 100 36장짜리 필름이 아직도 들어있다. 몇 장이 찍히고 빼지 못해 남아 있었을까? 어떤 곳, 누구를 찍힌 모습이 그 필름 속에 담겨있을지 궁금해졌다. 분명 20년도 넘었을 그 어떤 순간이 담겨있을 텐데 --- 카메라 뒤판을 강제로 열면 노출된 필름에 찍힌 모습은 현상할 수 없겠지만 그 앞쪽에 담긴 모습은 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필름을 현상 인화하는 곳이 있으려나 알아봐야겠다. 2000년대 전에만 해도 동네마다 25분 현상 인화 사진샵들이 많았는데 디지털시대로 넘어오면서 사라진 모습이 되었다.
DSLR 카메라 배터리를 반나절 충전시켜 카메라에 넣어봤다. 짜잔 ~ 카메라 전원이 들어온다. 카메라에 찍혀있는 사진 장면이 뭘까 궁금해 재빨리 백 뷰어를 켜본다. 509장의 사진이 찍혀있다. 2014년 8월, 영국으로 가족여행 갔던 장면이다. 런던 비킹검 궁전 앞, 내셔널 갤러리, 리전트 스트리트, 빅벤 등 런던 시내 여기저기와 옥스퍼드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Stratford upon Avon과 Cotswold, Bibury 전경이 담겨있다. 그 사진 속에는 아이들의 중학교 때 대학생 때 모습이 주역으로 등장해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 영국여행할 때 휴대폰으로 구글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찾아갔던 디지털의 신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 이후 무거운 DSLR카메라는 창고로 들어간 듯하다. 그 이후부터는 DSLR카메라에 사진이 찍히지 않은 것을 보니 말이다.
스마트폰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여행자의 어깨는 가벼워졌고 그 가벼움에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가방을 벗어던졌다. 나만해도 그렇다. 더구나 매년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들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웬만한 아마추어의 기량을 능가하게 됨으로써 DSLR 카메라의 사용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최근에 나오는 휴대폰 카메라들은 전문가 수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빛의 광량을 조절해 주고 손떨림이나 역광의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준다. 굳이 셔터스피드를 맞추고 조리개를 열어야 하나 닫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그냥 찍기만 하면 최상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카메라가 휴대폰에 장착되어 있다. 이제는 카메라의 기계적 기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사진을 잘 찍느냐 못 찍느냐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사진 구도를 어떻게 잡아내느냐가 결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물론 DSLR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다시 DSLR 카메라를 창고에서 꺼낸 이유는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을 때 반셔터 초점이 맞을 때 렌즈가 돌아가는 소리와 찰깍하고 찍히는 소리의 강렬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며 특히 뷰파인더에 파사체에 초점이 맞아 착 들어오는 그 순간의 희열 때문이다. 카메라 셔터 소리는 니콘이 다르고 캐논이 다르다. 나는 캐논보다 니콘 카메라 셔터소리를 더 좋아한다. DSLR 카메라를 다뤄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묘한 매력이 있다.
사실, 지난주부터 지인 사진작가가 하는 3개월 과정의 오프라인 사진강좌를 신청했다. "휴대폰 카메라가 자동으로 잘 찍는데 뭘 돈 들여가면서 배워"라고 핀잔을 줄지 모르겠지만, 어설프게 찍어왔던 사진 찍는 습관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3개월 동안 카메라 백이 무겁겠지만 옛날 생각하며 다시 매보기로 한다. 예전 같지 않겠지? 어깨가 처지겠지? 그래도 무게를 이기는 그 무엇을 위해 카메라백을 매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