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닐 때는 재테크를 잘해야 하지만 정년퇴직하고 나면 세테크를 잘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정년퇴직하기 전 같이 회사생활을 하던 선배님 6명과 모이는 모임이 있습니다. 봄가을로 일본에 골프 치러 같이 가고 매달 모여 근황을 묻고 식사를 같이하는 은퇴자들의 정보교환 창구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난 연말로 정년퇴직을 해서 이 모임에는 새내기입니다. 은퇴하면 어떻게 소일하는지, 먼저 정년퇴직을 한 선배들로부터 선행된 경험을 전수받는 아주 중요한 모임입니다.
어제도 7월 모임을 하느라 서소문에 있는 친정 건물 근처에 모여 저녁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은 더운데 근무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들고 사무실에 들러보려 했지만 퇴근시간 이후이기도 하고 괜히 갑작스럽게 들어가 후배들이 불편해할까 봐 그냥 약속장소로 향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이 "누가신지요?"라고 물을지도 모른다는 당혹감이 앞서서 망설여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예전 근무하던 건물 앞에서 한참 과거를 오버랩시키다 약속장소를 들어갔습니다.
매번 모이면 대화의 수위가 비슷비슷합니다. 건강에 대한 안부와 자녀 및 가족들의 근황, 그리고 가끔 정치 이야기가 등장하여 핏대를 올리기도 하지만 일단 정치 이야기는 금기어로 하기로 합의를 한 관계로 논쟁거리로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매번 모일 때마다 대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딱 3가지입니다. 건강, 세금 그리고 직장 같이 다닐 때 에피소드, 그중에 서운했던 상사들의 행태를 씹는 겁니다. 직장생활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마구 풀어헤쳐도 이제는 다들 이해하고 웃는 대화의 소재로 작동합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정도의 궁금증으로 옛날 직장생활을 소환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기를 버텨왔음에도 인식의 공간과 시간은 각자의 시계를 따라 흘러왔음에 가끔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정보의 흐름은 그렇게 각자의 몫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예전 직장생활이야기가 한 이야기 또 하고 하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양념처럼 모르고 생각나지 않던 사건들이 툭툭 섞여 등장합니다.
어제는 대화의 소재가 세금에 대한 내용에 집중되었습니다. 6월 말에 종합소득세를 납부했기 때문일 겁니다. 세금에 대한 소재는 정년퇴직자들에게는 필수적인 확인코스입니다. 다들 경험해 보셨겠지만 직장 다닐 때는 내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건강보험료는 또 얼마나 납부하는지, 심지어 국민연금은 얼마나 내는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매달 당연히 세금공제하고 연말에 연말정산으로 조정하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보통일 겁니다. 그러다 정년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하지 않으면 세금 내는 걸 본인이 일일이 다 챙겨야 합니다. 근로소득세뿐만 아니라 재산세, 지방세, 건강보험료 등등 내가 내는 세금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할 정도이고 이것을 매번 챙겨서 납부하는 것도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됩니다. 저는 지난달 DAUM 브런치 스토리에 쓴 글에 2,000원 응원하기 기부를 받고 이를 사업소득으로 신고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세금과 관련하여 은퇴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데 세금과 건강보험료는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재산세 등 세금을 납부할 정도로 쌓아놓은 재산이 있네. 부럽네. 나도 세금 내봤으면--- "정도의 비아냥으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근로소득이든 이자소득이든 잉여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들의 재산은 현금성보다는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에 묶여 있습니다. 은퇴하고 달랑 집 한 채, 차 한 대 있어도 재산세 내야 하고 이 재산에 따라 건강보험료도 매달 내야 합니다. 그것도 현금으로 말입니다.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 세금 내느라 차 팔고 아파트 팔아 작은 집으로 옮겨야 할 판입니다. 아니면 다시 노동 현장으로 나서던지 말입니다. 집 안 줄이고 세금 내려면 할 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세금 내봐야 얼마나 한다고? 건강보험료는 당신 아플 때 대비해서 말 그대로 보험 드는 건데 뭔 불만이야?"라고 치부하기에는 주머니 현실이 너무 달랑거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세금 이야기가 오가던 중 선배님 중에 한 분이 다소 충격적인 사례를 말씀하십니다. 요즘 은퇴자들이 세테크를 위해 심지어 위장이혼을 하는 경우도 주변에 있다고 합니다. 이혼으로 재산을 분할하면 취득 제산에 대한 증여세 및 양도소득세가 과세되지 않고, 명의 양도받는 사람이 1.5%의 취득세만 납부하면 되는 특례적용을 노린다는 겁니다. 이는 법원이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을 조세 회피 수단으로 보지 않는 한, 과세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을 악용한 것인데 그렇다고 이런 위장 이혼으로 재산을 분할하여 세금을 적게 내려는 편법이 그냥 통할리는 없을 겁니다. 이미 세무당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감시망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명목상 이혼을 하고 재산분할을 한 후에 정말 따로 살고 있는지를 추적 확인한답니다. 바로 신용카드 사용처가 어디인지 들여다보고 특히 교통카드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본답니다. 이혼을 했으면 서로 다른 지역에 살아야 하는데 명목상 주거지가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쪽 주거지역에서 신용카드와 교통카드가 사용된다면 위장 이혼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해외여행을 같은 곳으로 나갔는지도 위장 이혼의 덜미를 잡는 중요한 길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장이혼의 증거를 포착하는 길목을 피해 가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이혼을 할 때 이혼조건계약서 같은 서류를 작성한다는 겁니다. 이혼 이후에 해외여행을 1년에 두 번, 아이들 및 당사자 생일날 모여 회식 및 여행을 한다와 같은 내용을 넣어 작성하고 이를 공증받아 가지고 있는다는 겁니다.
정말 잔머리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세금을 줄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착잡할 따름입니다.
이 위장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선배님 한 분이 "위장이혼? 웃기고 있네. 도장 찍으면 남남이지. 아마 얼씨구나 하고 이혼도장 찍어줄걸. 뭐 지겹게 같이 살아. 재산분할도 했는데"라고 하셔서 한바탕 웃음으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