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치매라는 단어가 가까이 와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 사건이 지난 주말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우일 거라고 안위해 보지만 그 당혹감은 주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동갑내기 친구모임에서 역사문화답사로 성북동 길상사-옛돌박물관-수연산방-심우장을 다녀왔습니다. 토요일이라 조금 느긋하게 10시 45분 한성대입구전철역 6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전철노선 검색을 하니 집 앞에 있는 망우역에서 전철로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 여유 있게 9시 반 집에서 나와 전철역으로 갔습니다. 기온도 30도를 오르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어 반바지에 등산용 모자와 찬 생수를 넣은 텀블러, 휴대용 선풍기도 배낭에 넣어 준비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합니다. 참 그리고 오가며 유튜브 강의를 들을 블루투스 이어폰도 챙깁니다. 그렇게 집을 나섭니다.
전철역에 도착하여 친구들 단톡방에 출발했다고 전철역 플랫폼에서 사진을 찍어 보냅니다. 그리고 전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유튜브 강의를 보기 위해 배낭 주머니에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를 꺼냅니다.
그 순간!!!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 안에 이어폰 2개가 없습니다. "빈 케이스를 넣고 가지고 왔단 말이야?" 순간 들이닥치는 당혹감에 어질어질합니다. 이어폰이 왜 없는지 재빨리 유추해 봅니다. "어제 아침운동할 때 분명히 이어폰을 사용했는데 충전하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그대로 있구나"라는 강한 확신이 듭니다. "혹시 어제저녁 세탁기 돌린 거 아니야? 큰일 났네. 이어폰 망가졌겠는데" 재빨리 휴대폰으로 와이프에게 전화를 겁니다. 혹시 어제저녁 세탁기 돌렸는지 물어보기 위해섭니다.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는 와이프 전화번호를 누르고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대는 순간, 귀가 와닿는 전화기 벨 소리가 이상합니다. 귀를 만져봅니다. 이어폰이 귀에 꽂혀 있습니다. 그것도 양쪽 귓구멍에 말입니다.
다시 한번 당혹해집니다.
휴대폰 너머 "왜 전화했어?"라고 묻는 와이프 질문은 들리지도 않습니다.
이 현상이 어떻게 일어난 일일까? 차근차근 기억을 되돌려봅니다. 전철역 플랫폼에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며 배낭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카톡방에 사진을 보내느라 사진을 찍고 보냈습니다. 그 잠깐 사이의 엇박자난 듯한 행동으로 인하여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는 사실 하나가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찾아 당혹해하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빈 케이스를 봤을 때 당혹감이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의 당혹감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과거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동해서 일 겁니다. 몇 년 전에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이어폰을 아침운동할 때 바지주머니에 넣고 그대로 세탁기를 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 이어폰의 성능이 왼쪽 것보다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데 듣는 데는 지장이 없는 수준입니다. 이어폰이 없다는 동일 사건에 예전 사연을 귀신같이 끌고 들어와 현재로 치환시킴으로써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간혹 이런 황당한 사건들과 마주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위안을 삼습니다만 그 빈도수가 최근 좀 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집니다. 짧은 단기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해마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을 이야기할 때 거기에 맞는 명사 단어 하나가 안 떠오른다거나 사람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생각이 안 나서 "있잖아? 그 사람, 거 지난번에 같이 만났던---"으로 기억을 되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갑을 넘겼으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간혹 이렇게 방금 전 행동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반복된 행동조차 머뭇거리게 만든 순간과 마주하면 황망해집니다. 기억이 사라져 가는 부모님 세대의 시간을 지켜봐 왔기에 나의 시간도 그렇게 될 것이라 오버랩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원소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정신줄 놓지 않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정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어폰 사건 같은 일들을 겪고 나면 자괴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나이 듦이라고 치부해 버릴까요? "일상생활하는데 지장 없으면 됐어.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 주차장까지 갔다가 키 안 가져왔다고 집에 다시 올라가기도 하는데 뭐"라는 친구들의 위안으로 동질감을 갖는 것이 맞을까요? 무엇을 잊고 있는지, 잊혀 가고 있는지 되물어봅니다. 무엇을 잊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사는 게 일상이긴 합니다. 아니 하나씩 잊고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조차 잊고 사는 순간이 올까 왠지 불안해집니다. 정신줄 놓지 않도록 정신 차려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