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오만, 인간 본성의 그림자

by Lohengrin

‘갑질’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한국 사회의 고질병처럼 자리 잡았다. 단순한 무례함을 넘어선,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권력이나 지위, 자산 등의 우세함을 무기 삼아 타인에게 오만무례하게 군림하려는 태도가 바로 갑질이다. 오만이 ‘내면의 태도’라면, 갑질은 그 심리의 물리적, 사회적 발현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가 아닌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이 뿌리는 바로 인간의 본성, 권력욕, 우월감, 비교심리에서 비롯된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며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협업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러나 그 협업은 결코 평등의 장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늘 누군가는 더 많이 가지거나 더 앞서 있었고, 그러한 불균형은 상호의존이 아니라 서열화로 이어졌다. 누가 누구를 통제할 것인가, 누가 더 높은 위치에서 명령을 내릴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권력 투쟁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기도 하다.


갑질과 오만은 단순한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사회구조적으로 작동하는 복합적 현상이다. 사회적 우위에 선 사람들이 흔히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권력을 인식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공감’이나 ‘절제’가 아닌 ‘우월감’과 ‘통제욕’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오만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긍정이다. 그것은 때로 자신감을 가장하고 나타나며, 리더십의 언어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만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내가 옳다', '나는 틀릴 리 없다', '나의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다'라는 사고가 오만의 언어다. 이런 태도는 보통 사회적 성공과 함께 강화된다.

기업의 오너, 의사, 국가기관의 고위 공무원, 명망 있는 교수 등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오만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 동안 수많은 ‘보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성공의 기억을 통해 점점 자신을 ‘실패하지 않는 존재’로 착각한다. 성공은 마치 강력한 마취제처럼 과거의 실수와 우연조차 아름답게 미화한다. 과도한 야근은 ‘자발적 헌신’이 되고, 아첨과 복종은 ‘진심 어린 존경’으로 읽힌다. 이 미화된 기억은 비판을 불편하게 만들고, 충고를 괘씸하게 만든다. 그렇게 듣지 않게 되고, 외롭고, 점점 더 독선적인 존재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갑’의 자리에 서고 싶어 한다. 갑질을 혐오하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 위치를 동경한다. 이는 비교 본능과 서열 본능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보다 더 가지는 것, 더 높은 곳에 서는 것, 더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생존경쟁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다. 문제는 그 자리에 도달했을 때의 태도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상대적인 감정이다. 어떤 이는 돈이 많지만 권력이 없고, 또 어떤 이는 권력은 있지만 지식이 부족하다. 따라서 갑과 을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단 자신이 '남보다 낫다'라고 여겨지는 순간, 갑질의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내가 너보다 돈이 많아”, “내가 더 많이 알아”, “내가 더 영향력이 있어” 이런 감정이 행동으로 발현되는 순간, 갑질이 된다.


사람은 권력을 가지면 달라진다. 아니, 권력은 그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증폭 장치다. 평소 숨기고 있던 욕망과 억눌린 열망, 불안정한 자존감이 권력을 매개로 표출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섹시해졌다고 착각하고, 자신이 타인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다. 이는 ‘통제의 착각’이다. 사실은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고, 아첨과 칭송에만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벌을 주고 싶어진다.

권력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더 예민하게 읽는다. 관계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균형의 감각을 상실하고, 관계를 ‘힘의 역학’으로만 판단하게 된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보다 낮다고 여기는 이들의 평가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불쾌감은 곧 ‘무례함’이나 ‘무시’로 표현된다. 결국 권력을 통한 오만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마침내 파멸에 이르게 한다.


갑질과 오만의 뿌리는 ‘공감의 결여’다. 공동체는 개개인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집합체지만, 오만은 그 공동체를 '배경'으로 전락시킨다. 나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돌아보지 않는 태도는 단지 무례함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자체를 해치는 독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갑질과 오만의 본성을 제어할 수 있을까?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각하고 경계할 수는 있다. 교육과 법, 제도의 장치는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자기반성’이다. 나는 지금 타인을 존중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힘이 타인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가? 나의 말과 행동은 타인의 마음에 어떻게 전달될까?를 살펴 신독(愼獨) 해야 한다.


건강한 긍지는 필요하다. 자신을 존중하고 믿는 힘은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긍지가 타인을 얕잡아보는 오만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는 언제나 그 경계를 인식해야 한다. 꺾이지 않는 자기 확신은 필요하지만, 반성 없는 자기기만은 재앙이 된다. 거침없는 리더십은 아름답지만, 고집스러운 독선은 공동체를 해친다.

결국 갑질과 오만을 줄이려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두운 본성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둠을 회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양심이며, 진정한 ‘사회성’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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