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일까? 아닐까?

by Lohengrin

아침에 랩탑을 부팅하고 포털사이트 뉴스를 일견하고 넘어가다,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사진이 한 장 눈에 들어왔다. 골프 칠 때 아웃오브바운드(OB) 선상에 걸쳐진 볼이 OB인지 아닌지를 묻는 사진이다. 이 사진에 눈이 갔던 이유는 댓글들 때문이다. OB다 아니다의 의견이 거의 절반씩 나눠져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간단히 골프규칙 룰북을 보거나 chatGPT한테 사진을 주고 물어보면 될 일인데 OB냐 아니냐로 설전을 벌이는 웃기지도 않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원칙과 규칙은 개인의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자고 모든 사람이 합의를 하고 글로써 문장으로써 명시하여 정해놓고 거기에 따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원칙과 룰에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맞다고 우기고 있다.


규칙을 정하는 이유는 애매함을 없애고자 함이다. 애매함을 없애고자 함은 공정함을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기본 가이드라인을 정해 확실한 경계를 명시함으로써 의견차이에 따른 불평불만을 없애고자 함이다.


민사법이 어떻고 형사법이 어떻고 헌법이 어떻고, 크고 복잡한 법률적 용어는 차치하고서라도 간단히 동네 친구들이 모여 모임을 만들어도 회칙을 만들고 회비를 관리하고 회원들의 영입에 대한 조항들도 만든다. 사람들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 기준과 질서와 원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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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와 규칙을 정할 때 적용하는 중요한 법체계 시스템이 있다.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과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은 "법이나 규칙으로 정해진 것만 허용하고 그 외는 금지하거나 불법으로 간주는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보다 공공의 안전이나 통제를 우선하는 방식이다. 반면 네거티브 시스템은 "법이나 규칙으로 금지된 것만 제한하고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 말 것을 명시하는 것과 허용하는 것을 적시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쉽고 편리할까? 내가 보기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허용 가능한 것을 조항으로 만들어 적시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들 것이다.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마다 합법이 되기 위해서는 끝없이 법과 규칙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방식의 법체계는 엄청난 철학적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포지티브 시스템은 정부가 하나씩 규제하는 규제 우선 제도인 반면 네거티브 시스템은 개인의 행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우선 제도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이나 서구권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법을 운용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시스템이다. 법 조항에 없는 것을 하면 불법이 되니 민간 기업에서는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면 이것이 법에 저촉되는지를 먼저 따져보게 된다. 새로운 행위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아니면 법이 뒷받침되도록 법 조항을 새로 만들어 넣어 합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온갖 로비와 부정부패의 뿌리가 되고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거만이 하늘을 찌른다.


알면서도 제대로 안 고쳐지는 이유는 바로 관습과 매너리즘의 편안함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을 바꾸기 싫은 기득권의 알량한 권력 때문이고 그 마약과 같은 권력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OB 라인 선상에 걸린 볼이 OB인지 아닌지에 대한 사진 한 장 때문에 법 철학의 한복판까지 왔다. 그렇다면 OB 선상에 걸린 볼은 OB일까? 아닐까? 골프협회 룰 북에 의하면 OB가 아니다.


모르거나 애매하면 찾아보자. 내가 공부하지 않고 '그럴 것이다'라고 들이대는 대부분의 지식은 오류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다. 지식은 확실함이 생명이다. 룰은 그래서 확실함을 확인하는 봉인이다. 기원전 1700년 경 만들어진 함무리비 법전도 그렇게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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