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위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 있어 ‘제목 달기’만큼 중요한 작업도 드물다. 제목(題目; title)은 글, 그림, 음악, 강연 등 창작물의 의미와 내용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제목은 단순한 명칭을 넘어, 해당 작품의 첫인상이자 대표 얼굴로 기능한다. 마치 그림의 마지막 붓질처럼, 제목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화룡점정이다.
글을 쓸 때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작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제목을 먼저 정하고 그에 따라 글을 구성해 나가고, 또 어떤 이는 글을 완성한 뒤 그 내용을 가장 잘 담아내는 한 줄의 제목을 나중에 붙인다. 어느 방식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제목이 글의 본질을 담아내야 하며, 전체 내용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작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제목'이 마케팅의 수단으로 넘어오는 순간, 그 역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영화 제목, 책 제목, 노래 제목, 전시 작품 제목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접하는 뉴스 기사 제목까지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며,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질되고 있다. 제목의 본래 목적이 ‘내용의 요약’과 '대표 키워드'에 있다면, 오늘날 많은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여 클릭을 유도하는 미끼’ 역할로 전락해 있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인간의 본능이 있다. 호기심 많고 자극에 반응하는 인간의 특성을 이용해, 강렬하고 눈길을 끄는 제목을 통해 시선을 붙잡으려는 전략이 범람한다. '섹시한' 제목, '충격적인' 제목,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이 넘쳐나며, 제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콘텐츠의 진실성과 정보 전달의 품위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온라인 뉴스다. 기사 클릭 수에 따라 광고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는 언론의 존엄을 무너뜨리고, '낚시성 제목'이라는 유혹으로 언론사들을 무너뜨린다. 과장과 왜곡, 심지어 기만에 가까운 제목이 난무하며 독자의 신뢰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늘 아침 포털사이트 뉴스에 보이는 기사를 보자. "안재욱, 안타까운 결별 소식 전했다… '하늘나라에서 원 없이 뛰길'" 이 제목만 보면 유명 배우 안재욱이 사망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클릭해 보면, 그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내용이다. '하늘나라'와 '결별'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독자의 감정을 조작하고 있다. 이런 제길, 제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개인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가?
이런 류의 기사 제목은 넘쳐난다. "조국, 어제 나왔다... '축하합니다'라는 뉴스에이드라는 매체의 기사 제목이다. 수감 중인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특사로 출소한 것으로 읽힌다. "뭐야! 8.15 특사에 포함되어 나오는 건가?"의심이 들어 기사를 클릭하게 된다. 기사 내용은 수감생활 중에 집필한 '조국의 공부'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기사다. 매체의 제목 낚시가 성공한 건가?
이처럼 제목만으로는 진실을 알기 어렵고, 오히려 검증을 위해 다른 기사들을 다시 찾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가려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 그 원인은 명백하다. 제목의 품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제목이란 원래 독자의 시선을 붙잡되, 내용의 진실성과 품위를 함께 담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의 제목들은 과장과 말장난으로 채워지고, 정보 전달 기능은 실종된다. "충격" "경악" "역대급" "사상 최초" "○○의 진실" 같은 단어들은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고, 오히려 독자를 피로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형식이 뉴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세련되고 의미 있는 제목을 뽑는 편집자와 매체도 존재한다. 위트와 유머가 살아 있으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제목, 전체 내용을 함축한 정확한 제목을 만드는 이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이들은 점점 소수의 예외로 치부되고, 자극적인 제목에 익숙해진 대중의 시선은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목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콘텐츠의 영혼이자, 독자와의 첫 만남이다. 제대로 된 제목은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글쓴이의 진심을 품고 있으며, 독자의 시간을 존중한다. 반대로 조잡한 제목은 독자를 기만하고, 정보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좋은 정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쓰레기 정보를 뒤져야 하는 현실은 피곤하다. 제목이 더 이상 정보를 대표하지 못하고, 감정적 조작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언론의 신뢰 회복은 요원해진다.
제목의 엄중함을 회복해야 한다. 시선을 붙잡기 위한 유혹도 좋지만, 최소한의 품위와 정확성을 지켜야 한다. 제목은 마케팅 수단이기 전에, 독자와의 약속이다. 이 약속이 무너진다면, 아무리 많은 클릭이 따르더라도 그 콘텐츠는 쓰레기로 남는다. 품위를 잃은 기사는 기사가 아니다. 정보를 전하는 장사꾼 수준도 못된다. 그냥 쓰레기 양산업체일 뿐이다. 정보와 지식이 차고 넘치는데 쓰레기 속에서 진주 찾는 일이 되어버렸다면 쓰레기를 걸러내는 게 맞다.
이 글을 쓰며 혹여 지나치게 부정적인 예만 든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든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훌륭한 제목과 편집자들이 분명 존재함에도, 쓰레기 제목이 너무 많아 하소연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이 감정이 나만의 불평불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느끼고 있는 현실의 피로함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제목, 더 품위 있는 콘텐츠를 기대할 자격이 있다. 또한 나 자신부터 에세이를 쓰고 제목 다는 데 있어 너무 경솔했던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