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이 정확해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

by Lohengrin

“용어의 개념이 헷갈리면 나라도 팔아먹는다.”


이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얼마나 개념이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정치나 법, 윤리와 같은 공공의 영역에서는 개념 하나의 왜곡이 국가 운영 전체를 오도하고,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며,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흔들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법치주의’다.


법치주의(法治主義, Rule of Law)는 말 그대로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뜻한다. 권력자든 일반 시민이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며, 그 법은 자의가 아닌 절차와 원칙에 따라 형성되어야 한다. 이 개념은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를 막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개념은 ‘법으로 다스리는 것(Rule by Law)’으로 오해된다.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다스리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정당해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자가 법을 통치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궤변일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법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그 결과는 언제나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권력자는 언제나 법의 외투를 쓰고 다가온다. 법을 직접 어기지는 않더라도,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활용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정당화한다. 예컨대 경쟁자의 약점을 찾기 위해 먼지떨이식 수사를 감행하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억지로 단서를 끼워 맞추어 범죄 혐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으레 말한다. “법대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이었는가? 법의 진정한 정신은 ‘공정’과 ‘보편성’에 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누군가에게만 불리하게 적용되거나, 권력자에게만 관대하게 작동하는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그것은 법의 탈을 쓴 통치술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법 해석은 결국 ‘준법주의’라는 껍데기로 전락한다. 준법주의는 단순히 *“법을 지키자”*는 원론적 주장이다. 문제는 법의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정해진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될 때, 그 법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고 맹목적 복종만 남게 된다. 결국 준법주의를 법치주의로 착각하게 되면, 법의 정신을 무시한 채 권력자에게 유리한 법 적용을 정당화하게 된다. 법의 실체보다는 형식에만 집중하게 되고, 진짜 정의는 사라진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개념의 혼동과 법의 오용이 어떻게 현실에서 나타나는지를 수없이 목도해 왔다. 검찰 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시민을 제압하고, 경제적·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법의 그늘 속에서 자신들의 특권을 공고히 해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위기를 내세워 계엄령을 발동하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도 있었다. 그런 시도들은 결국 한국 사회에 깊이 숨어 있던 권력 기생 세력들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목격했다. 준법주의를 법치주의로 오해하거나 조작한 몰상식한 권력자의 몰락을. 시대가 바뀌었음을 모르고 여전히 전제군주처럼 군림하려 했던 자의 말로를 보고 있다.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한 대가는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혼란의 출발점은 ‘개념의 혼동’이다.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고의적으로 왜곡된 해석을 따르는 사회는 결국 혼란과 불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개념은 단순한 단어의 정의가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식의 틀’이며 ‘행동의 기준’이다.


법치주의의 정확한 이해는 단지 법률 전문가나 정치가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시민이 가져야 할 민주사회의 기초 지식이며,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왜냐하면 그 개념을 온전히 이해할 때 우리는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남용이며, 무엇이 권력의 사유화인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눈의 높이는, 우리가 개념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치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의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가 제대로 된 개념 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권력을 견제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설 수 있으며, 스스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감시하자. 개념은 무기가 되고, 언어는 힘이 된다. 오늘도 정확한 언어와 개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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