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를 가려내는 눈

by Lohengrin

한국 사회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우리가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것, 단호히 등을 돌리는 대상은 의외로 명확하다. 지식인, 권력층, 기득권 세력의 위선과 거짓, 그리고 그들의 오만함이다.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거나, 권력을 이용해 특권을 누리고 민심을 외면하는 순간, 국민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물론 한국 사회는 오랜 유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인물 평가에 있어 도덕적 기준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가진 자의 위선'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족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거나 민심과 동떨어지면, 한국 사회는 절대 그들을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분노는 크지만, 망각의 속도 또한 빠르다.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외쳤던 사람들도 몇 년 후에는 그 인물의 변신을 또다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용서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까먹는 거다. 위선자들은 이를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4년마다 가면을 바꿔 쓰고 다시 등장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인 이들이 감언이설과 연민의 전략으로 다시 민심을 파고든다.


이러한 반복이 가능한 이유는 시대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권력자가 통제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정보의 흐름 자체가 제한되었다. 국민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메시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다. 인터넷과 SNS로 인해 정보는 넘치고 또 넘친다. 문제는 이 과잉된 정보 속에서 무엇을 신뢰하고 판단할 것인가 하는 ‘정보 정제 능력’이다.


이제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그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도덕성과 실무 능력을 동시에 검토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도덕적 흠결 하나만으로 실력 있는 이들이 매장되기도 하고, 반대로 말과 이미지로 포장한 위선자가 능력자인 양 추앙받기도 한다. 정보 부족의 시대에는 속아서 잘못 뽑았고, 정보 과잉의 시대에는 헷갈려서 잘못 뽑는다. 결국 결과는 ‘거기서 거기’인 인물이 선택된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지금 한국 정치와 사회의 딜레마다.

도덕적 기준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기준이 사라진 적은 없다. 어떤 시대든, 사람들은 결국 인물의 ‘진정성’에 주목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위정자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바로 그것이다. 똑똑한 말보다, 실천이 담긴 삶의 태도.


영국의 역사학자 폴 존슨(Paul Johnson)은 '지식인의 두 얼굴(Intellectuals)'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그는 “지식인은 언제나 옳다”는 대중의 믿음에 의문을 던지며, 지식인들이 보여준 삶의 이중성과 위선을 냉철하게 조명한다.


루소는 자연과 교육을 설파하며 자신의 다섯 자녀를 모두 고아원에 보냈고, 마르크스는 노동해방을 외치면서 자신은 노동 경험이 전혀 없으며 가정부에게조차 급여를 주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무소유와 비폭력을 말하면서도 대저택을 소유하고 여성편력을 즐긴 인물이었다. 존슨은 이들의 지식과 철학이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자기 연출의 수단이었다고 지적한다. 지식은 많았지만 성찰은 없었던 이들.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말이 아닌 삶을 보라. 말로는 누구나 정의롭고 겸손하며 포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과 삶의 궤적이 일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겉으로는 청렴함과 헌신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권력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청산유수의 언변을 가진 이일수록 더 경계해야 한다. 그 화려한 언어의 포장 속에 숨겨진 위선의 실체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난다. "해방될 줄 어찌 알았겠나?" "장관 하라고 할 줄 몰랐지. 알았으면 그리 했겠나?" 등등 위선의 가면은 그렇게 변명으로 벗겨진다.


지식이 많다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단지 도구일 뿐, 그것을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쓰느냐는 전적으로 인격의 문제다. 판단력과 분별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지식이 삶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오히려 오만과 위선을 키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말뿐인 ‘지식인’에 속아서는 안 된다. 지식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이다. 지식인이란, 단지 책을 많이 읽고 박학다식한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영향력을 타인을 위한 삶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의 참된 미덕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이 아닌 언행일치(言行一致)에 있다. 포장된 말과 이미지보다 삶의 궤적을 보면 된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철학이 진짜인지, 그저 그럴듯한 포장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바로 이것이다.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기보다, 침묵 속에서도 실천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눈. 정제되지 않은 정보 속에서도 진실을 꿰뚫는 분별력. 진정한 지식인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불이어야 하지, 스스로를 포장한 거울이어선 안 된다. 그 포장을 걷어내고 진짜 얼굴을 보는 힘은 오직 우리의 선구안에 달려 있다.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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